하얀 집의 왕
깎아놓은 절벽처럼 높다랗게 둘러싸인 주벽이 휘감아 돌아갔다. 하얀 밀가루를 발라놓은 듯한 담은 마치 죄어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안으로 기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무늬처럼 드러난 자국들이 거무스름하게 보였다. 거기에는 문이 두 군데 있었다. 동편으로 나 있는 철문은 항상 굳게 닫혀 있었다. 정문은 가끔 열렸으나 무엇을 감추기라도 한 듯 금방 닫혀졌다. 그 문은 담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먹을 음식, 작업에 필요한 재료나 쓰레기, 분뇨, 혹은 그들에게 팔아야 할 과일 같은 것 등을 실어 나를 때에만 열렸다. 그리고는 곧 닫혀져버렸다. 그러나 동문은 달랐다. 일년 중 한 번쯤 열리까 말까 했다. 그 문은 죽은 사람의 시체가 나갈 때에만 열렸다. 그러니까 사형집행이 있는 날 그곳을 통해 주검이 실려나가는 것이다. 주벽 군데군데에는 감시대가 있었다. 등대처럼 높다란 망대 안에서는 총을 든 사람이 담 안에 있는 재소자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굳게 닫혀있는 철문이 철커덕 소리를 크게 내며 열렸다. 금테모자를 쓴 사람이 들어섰다. 가슴에는 휘장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훌륭해 보였다. 그의 손에는 아침 햇살에 번들거리는 지휘봉이 들려 있었다. 그 뒤로 여러 명의 사람들이 따라왔다. 그들도 금테모자를 쓰고 있었다. 지휘봉을 든 사람이 발을 멈추었다. 뒤를 따르던 사람들도 발을 멈추고 그를 둘러쌌다. 지휘봉이 앞에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사람들의 눈동자가 지휘봉의 끝을 따라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보안과 건물 앞에 툭 튀어나온 베란다로 가 꽂혔다. 거기에는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하얀 바탕에 파란 글자로 씌어진 것이었다. 얼마나 단단히 붙여놓았는지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