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사람들
새작골이라는 산골 동네 앞에는 노인들이 화톳불을 피워놓고 신작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이 가까워지니 도시로 돈을 벌려간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텔레비죤에서 보고 들은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무료함을 달래었다. 그 노인들 속에는 용두댁이라는 노파가 끼어 있었다. 용두댁은 육이오 때에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다. 전쟁통에 낳은 막내아들을 잘 길러 대학까지 보내어서 서울에서 잘 살고 있었다. 용두댁은 그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용두댁의 큰아들 준희는 전쟁이 터지기 전에 영장이 나와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 작은아들 기희는 형의 입대를 반대한다. 기희는 동네에 이사온 용팔이라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서 공산주의 사상에 물이 들며 깊게 빠져버렸다. 그래 준희와 기희는 자주 싸움을 벌렸다. 준희는 이념에 관한 것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여 장날 시장에 가서 중학교에 다닐 때의 사회 선생님을 만나 물어보게 된다. 선생님은 자본주의라는 것은 인간의 소유욕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제도이며 공산주의는 사회 전체만을 생가해서 인간의 소유욕을 무시하는 제도라고 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양면성이 있어 두 가지를 함께 잘 조화시켜 살아야 된다고 했다. 그리고 인간의 삶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통일도 싸우지 않고 서로를 사랑할 때에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래 준희는 군대에 입대했다.
전쟁이 터졌다. 면서기가 모내기를 하는 들을 찾아다니며 젊은이들을 자원 입대시키라고 강요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용두댁은 모내기를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 다음날은 자기의 논에 모내기를 하는 날이었다. 밤늦도록 모내기를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야 기희가 돌아왔다. 용두댁에게 입산을 하겠다며 집을 나 갔다. 남편 용두양반은 도망친 아들을 찾으려 다녔다. 동네 골목을 돌아다니며 기희를 불렀다. 기희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소문내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면서기에게 변명할 구실을 만들었다.
새작골 앞산과 뒷산에서 총을 쏘아대며 싸우던 날밤 용두댁은 아들을 낳았다. 그 날밤 산사람들이 마을에 들어와 옆집 소를 강탈해 갔다. 주인이 빼앗기지 않으려고 반항하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 장사를 치르려고 준비를 하던 날 밤 용팔이가 찾아왔다. 자식들을 인민군에 보내달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군대에 보내지 않고 빼 돌렸던 오 대 독자 외아들이 붙잡혀 갔다. 그리고 얼마 후 인민군들이 쫓기어 산 속으로 들어가면서 새작골을 들렸다. 한 밤중에 찾아온 그들은 새작골에서 밥을 해 먹고 갔다. 동네 사람들의 식량과 짐승들을 빼앗아 달아났다.
얼마 후였다. 보이지 않던 구장과 순경들이 새작골을 들락 거렸다. 인민군에게 밥을 해 주었던 사람과 식량, 짐승을 빼앗겼던 사람들이 지서로 붙잡혀 갔다. 용두양반도 소를 빼앗겨 끌려갔다. 지서장에게 큰아들이 군인이라는 말을 하면서 살아 나온다.
용두양반은 어느 눈이 내리는 추운 날 동네 사람들과 화톳불을 피우면서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야경을 하려 가려는 순간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에게 붙잡혀 간다. 그 때에는 용팔이를 따라간 작은아들 기희를 들먹거리며 살게 된다. 이렇게 입산하여 기희를 만난다. 용두양반은 아들 기희에게 토벌작전이 오기 전에 도망치자고 한다. 기희가 반대한다. 아버지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한다. 용두양반도 기희가 가지 않으면 안 가겠다고 버티었다. 군대에 간 준희가 토벌작전을 왔다. 그 싸움에서 기희는 형 준희를 죽이고 용두양반은 아들 기희를 죽이게 된다. 이 사실을 같이 야경을 하려 나 갔다가 붙잡혀 간 용두양반의 사촌 동생 삼진이가 살아와서 전해 준다. 용두댁은 이렇게 되어서 과부로 혼자 살게 되었다.
용두댁은 외롭게 살아오면서 나이가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서 잘 살고 있다는 막네 아들네 집을 찾아간다. 늙어서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아들과 같이 살기 위해서 였다. 아들집에서 며느리와 다투게 된다. 손자에게 용돈을 주는 것을 반대하다가 며느리와 싸우고는 새작골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다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동네에 아들을 결혼시키는 집에서 잔치가 벌어졌다. 용두댁도 그 집으로 끌려갔다. 거기서 한 아낙네가 중매를 선다. 홀로 사는 남편의 친구 진골양반과 같이 살라는 것이었다. 옆 사람들이 귀찮게 굴어 아들이 허락을 하면 같이 살겠다고 약속을 해 버렸다.
그 진골양반은 아내가 병으로 죽자, 용두댁에게 같이 살자고 하면서 몇 차례 추태를 부렸다. 용두댁은 그것을 피하려고 사투를 벌렸다. 한 번은 뒷산으로 도망가 절벽에서 떨어지려고 했다. 두 번 째는 집으로 찾아온 진골양반 앞에서 은장도로 배를 찔러 자결하겠다고 협박하여 모면하였다. 이렇게 지켜온 절개였다. 성화를 부리는 사람들이 귀찮아 아들의 핑계를 대었던 것이 잘 못이었다. 아들은 재혼을 시킬 것 같았다. 요새는 홀로 된 부모를 결혼시키는 것이 효도라고 했다. 용두댁은 그 죄책감에 빠져 술을 많이 먹고 죽게된다.
다음날 노인들은 마을 앞에 모여 용두댁을 기다린다. 나오지 않아 진골양반이 용두댁의 집을 찾아간다. 용두댁이 텔레비죤을 켜놓고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가슴에는 남편의 사진이 든 액자를 껴안고 있었다.
노인들은 용두댁의 죽음을 슬퍼한다. 차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버스 속에는 자신들을 데리려 올 저승사자들이 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