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 역괴 정여립
선조 기축년(己丑年) 역옥(逆獄)의 괴수 정여립(鄭汝立)은 전주 남문 밖에서 대대로 기거하던 사람이었다. 그의 부친은 정희증(鄭希曾)이니 일찍부터 벼슬길에 나서서 지방의 군수로 여러 번 지냈었다.
그는 여립(汝立)을 낳을 때 꿈에 정중부(鄭仲夫)를 보고 낳았으므로 일가친척들이 와서
“아들을 낳으니 얼마나 기쁘냐?”
하고 치하를 하여도 다른 사람들이 아들을 낳고 치하를 받는 것과 같이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기색이 좋지 못하였다. 그 까닭은 정중부(鄭仲夫)는 옛날 고려 때 유명한 역적으로 문신(文臣)을 함부로 죽이고 최후에 임금까지 폐하여 국가에 큰 화란을 일으켰다가 필경은 자기의 몸과 집까지 멸망을 당한 자이었기 때문에 혹시나 자기의 아들이 장래에 장성하여 정중부와 같이 역적도모를 하다가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지나 않을까 하고 미리부터 염려하는 것이었다. -<본문에서>
차상찬 선생은 한국 근대사에서 아주 드믄 언론·출판계의 거목이었고 야인의 기질을 갖춘 민중운동가이기도 했다. 생전에 “왜놈들이 망해서 게다짝을 끌고 도망가는 것을 꼭 보고 말겠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일도 한껏 펼친 텐데…”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사화(史話)ㆍ인물만평(人物漫評)ㆍ사회풍자(社會諷刺)ㆍ만필(漫筆)ㆍ소화(笑話)ㆍ민속설화(民俗說話) 등 다양한 글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