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경매(Ravished Armenia)
<책 소개>
인간은 어쩌면 서로를 죽이지 않을 정도까지는 진화할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인종청소나 대학살이 끊이지 않고 반복된 19~20세기에 이르면 그것이 거의 확실한 가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다.
참혹하게 슬픈 이야기며 믿어지지 않는 사건이다.
하지만 모두 실화이다.
터키만이 부정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주인공인 저자의 너무나도 담담한 서술로 오히려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이다.
오로라 마르디가니언은 용감하고 선명한 마음을 지닌 터키 동부 지역에 사는 소수 민족인 아르메니아 소녀였다.
오로라는 14살의 나이로 1915년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인종대청소에서 가족 모두를 잃고 혼자만이 살아 남게 된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 동족이 겪고 있는 비극을 알리겠다는 사명감에 구술한 작품이 바로 이 ‘Ravished Armenia’이다.
여기서 ravished는 ‘완전히 파괴된’ 또는 ‘겁탈당한’의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이다.
터키는 아직도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그 당시 120만 ~ 150만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사건은 거의 모든 세계 각국에서 인정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미국은 터키가 중요한 우방국인 관계로 아직 공식적으로는 인정하고 있지 않으니 이 역시 가련한 인류역사의 일부분일 뿐이며 진실은 그런 식으로 가려지지 않는다.)
오로라는 기본 교육만을 마치고 대학살이 시작된 14살부터 16살까지 (1915~1916) 무려 2,300 km를 끌려 다니거나 도망 다녔기 때문에 스스로 조리 있게 글을 쓸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고 16살 때 미국에 도착하였으나 거의 영어를 하지 못하여 통역관을 통해 구술한 내용을 H.L. Gates가 편집, 출판한 책이 바로 ‘Ravished Armenia’이다. 당시 출판되자마자 39만부가 팔렸고 이것은 당시로서는 거의 경이적인 부수였다.
책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자 미국 영화계에서는 돈이 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이 책을 토대로 꽤 미모를 갖춘 오로라를 직접 등장시켜 영화를 만들게 되고 오로라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배역을 맡을 뿐만 아니라 실제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모든 자문을 하게 된다.
하지만 오로라는 자신이 구세주처럼 생각했던 미국에서 그리 운이 좋지 않았다.
영화제작자는 영화 홍보를 위해 전국적인 로드쇼를 갖게 되는데 영화 출연료도 받지 못한 오로라는 이를 거부한다. 거부하자 제작자는 다른 대역을 이용하여 가짜 오로라를 내세우며 데리고 다니면서 전국적인 로드쇼를 한다.
결국 오로라 마르디가니언은 출연료도 받지 못하고 영화계와 협잡꾼들과 구호단체에게 이용만 당한 꼴이 되지만 이 영화는 당시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센세이션을 일으켜 상영 중지 또는 부분 삭제들의 조치를 당한다. 여자들이 영화를 보다가 충격에 쓰러지고 기절하는 일들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아마도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 지금 보면 아주 완곡한 표현이며 별로 자극적인 면도 없는 다큐멘터리 수준의 영화이다. 또한 영화의 내용은 많은 부분이 상업적으로 이용된 흔적이 남아 있는데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이 원래 85분 영화 중에서 지금은 23 분 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1920년대에 이르자 영화는 영화대로 여러 가지 제약과 제제를 받고 책은 책대로 알 수 없는 이유로 미국과 영국의 많은 도서관에서 사라진다.
그리하여1930년대 들어 책도 영화도 모두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진다. 오로라 역시 대중의 시선으로부터 사라진다.
그리고 오로라는 치유 받을 수 없는 상처와 함께 일생을 살아간다.
“그 일들은 2분 아마도 3분쯤 사이에 벌어진 것이고, 나는 그곳에 서있었고, 경찰이 나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나에게 속했던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쓸려 날아갔다?엄마, 마르디로스, 호브난, 그리고 사라. 그 시신들이 내 발치에 있었다. 엄마와 호브난은 두 눈을 내게로 향한 채 죽었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눈이 그 눈들을 매일 낮, 매일 밤 보고 있다?거의 매 시간마다?내가 지금 있는 내 주변의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 때도. 나는 그 눈들을 몇 시간에 한 번씩 쓸어 감겨주어야 한다. 그 모습이 떠오르지 않게 하려고.”
그리고 은둔생활을 하다 1994년 캘리포니아 주에서 임종을 지켜보는 사람도 없이 쓸쓸히 생을 마감한 후 비석 하나 없이 무연고자들의 공동묘지에 묻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