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문 - 화남 소설집
신예작가 김혜정의 첫 창작집인『복어가 배를 부풀리는 까닭은』(2000)에 수록된 동명의 표제작이나, 등단작인「비디오 가게 남자」(1995)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김혜정의 소설에는 일관되게 상처받은 영혼들과 그들의 소통 부재에 관한 이야기들이 주요 테마를 이루고 있다.
그의 소설들은 바로 그런 상처의 기억들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인간 존재의 조건과 소통의 어긋남, 그리고 삶의 불가해함을 탐색하고 있다.
소설 『바람의 집』에서는 상처에 대한 여러 갈래의 기억과 그 기억에 남아 있는 상처의 양상들을 벗겨가면서 불가해한 삶의 미궁 속을 헤쳐 나간바 있다. 작가 김혜정이 주로 보여준 세계는 삶을 알 만큼 아는 사람들의 쓸쓸하고 고뇌에 찬 가슴앓이였다. 삼십대에서 육십대에 이르는 폭 넓은 연령층의 화자를 등장시켜 이 시대 여성이 처한 다양한 삶의 질곡을 보여주면서 그 내면의 정서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것이 김혜정의 소설세계였다.
신예작가 김혜정의 신작 장편소설『달의 문』은 이 작가의 전 소설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즉, 작가 김혜정은 이번 첫 장편소설에서 뜻밖에도 탄생에서 초등학생을 거쳐 여고생 나이에 이르기까지 한 어린 여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내용 면에서는 이전 소설들이 줄기차게 보여주던 삶의 상처라는 화두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10대의 과정을 통과하며 겪는 상처와 성숙의 이야기들이 이 소설의 주요 얼개를 형성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이른바 ‘성장소설’의 범주에 든다고 할 것이다.
장편소설『달의 문』은 여타 작가들의 성장소설과 달리 한 인간의 탄생 출발에서부터 유소년기를 거쳐 10대에 이르는 전 성장 과정의 다양한 삽화들을 통해 부정과 긍정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유감없이 펼쳐 보임으로써 성장기 통과의례를 애틋하게 형상화해내고 있다.
특히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전생의 기억은 이 소설이 독자에게 어떻게 읽혀지기를 바라는지에 대한 작가의 의지가 실린 대목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