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서 만난 나의 멘토
이른바 88만원 세대가 가장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불의? 환경오염의 주범들? 아마도 ‘간지 나지 않는’ 것들이 아닐까. 특정 정치인이 싫은 이유가 ‘추해서’라니. 스키니 진에 큼직한 스카프를 멋들어지게 두른 이들을 보노라면 과연 그럴 만하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인생이 마냥 장밋빛은 아니어서, 취업을 목표로 ‘스펙’을 쌓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어도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다른 이들은 가능성이라고 부르지만 본인들은 안개 속을 걷는 듯한 청춘.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진심어린 멘토링을 해 주고 있는가. 추한 것을 용서할 수 없는 88만원 세대에게 아름다운 작품과 함께 예술가들의 삶에서 배우는 지혜보다 더 좋은 멘토링이 있을까.
그리하여 여기 한 권의 책 ‘그림에서 만난 나의 멘토’를 건넨다. 당당해서 아름답지만 어디로 발을 내딛어야 할지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색깔’ 있는 멘토, 속 깊은 멘토링
어느 시대에나 예술로 성공하기는 힘들고, 미술을 해서 큰돈을 벌었다는 사람도 드물다. 수많은 습작과 훈련, 누구와도 닮지 않은 개성, 비난과 찬사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배짱, 인정받기까지 가난과 무명을 견디는 인내, 자신의 재능을 알리기 위한 치밀한 전략까지. 이 모든 것을 넘어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면 그들의 삶에 귀 기울여볼 만하지 않은가. 이 책은 작품만큼이나 개성 있게 살았던 대가들 19명의 인생을 조근조근 소개하면서 속 깊은 멘토링을 전한다. 우리의 안목과 인식을 넓혀주고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작품들과 함께.
포지셔닝의 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앤디 워홀
현대 문명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기기들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미 수백 년 전에 내놓았던 천재 레오나르도. 보통 천재 하면 떠오르는 건 뱅글뱅글 돌아가는 두꺼운 안경과 부스스한 머리, 뭔가에 몰두해서 나사가 빠진 듯한 표정. 한마디로 그다지 패셔너블하지 않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달랐다! 그가 살던 16세기에는 긴 수염이나 머리를 하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긴 옷이 유행이었다. 그러나 그는 긴 수염과 머리칼을 우아하게 날리며 무릎 길이의 장밋빛 옷을 입고 다녔다. 게다가 균형 잡힌 몸매까지 갖추어서 그의 지성뿐 아니라 외모까지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름 하여 이미지 포지셔닝의 선구자.
팝아트의 아이콘 앤디 워홀. 지금도 미술가였는지 미술 마케팅 전문가였는지 논란이 분분하지만, 어쨌거나 그로 인해 팝아트가 현대인들에게 각인이 된 건 분명하다. 그는 유명인들과 어울리기 좋아했고 스스로도 연예인처럼 살았다. 자신을 유명인으로 포지셔닝했기에 그의 작품도 인기를 누렸다. 예술품도 공장에서 찍어내듯 생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그의 스튜디오 이름도 ‘팩토리The Factory’였다.), 누구나 미디어를 통해 십여 초 만에 유명인이 될 수 있는 시대를 비웃으면서도, 또 미디어의 이런 속성을 누구보다 잘 이용했다.
세상을 바꾼 외골수, 세잔과 모네
“사과 하나로 파리를 정복하겠다.”고 했던 세잔은 현대미술까지 정복했다. 후대의 화가들은 그를 ‘현대회화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러나 외골수 세잔에게 세상은 녹록하지 않았다. 화가의 길을 가도록 격려했던 친구 에밀 졸라마저도 ‘실패한 천재’라며 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는 계속 그렸다. 사과가 썩을 때까지 그렸고,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모델을 150번이나 앉혔다. 이렇게 해서 세계 역사상 3대 사과 중 마지막 작품이 탄생했다.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그리고 세잔의 사과.
가난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모네. 그러나 태양 아래 미묘하게 색을 바꾸는 들판,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 시시각각 바뀌는 물빛 등 대자연 자체가 그의 스승이 되어주었다. 자연의 변화를 섬세하게 잡아내는 데만 맘껏 몰두하며 작업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인생이 어디 그렇게 쉽던가. 가난에 쪼들렸던 모네는 채권자들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 작품을 스스로 찢어야 했고, 아내가 임신하자 풍경화로 생활을 꾸려보려 했으나 눈병 때문에 장시간 야외에 머무르지 마라는 의사의 충고를 받는다. 친구에게 물에 빠져죽고 싶었다고 할 만큼 힘들었지만 그는 자연을 저버리지 않았다. 자신의 눈으로 본 것만 믿으며 더욱 풍경화에 매달렸다. 결국 그는 인상파의 핵심 인물로 지금까지도 가장 사랑받는 화가가 되었다.
행복을 빌려주는, 페르메이르와 르누아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모습이 맘에 들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더 행복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알랭 드 보통의 주장처럼 성공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고, 그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자신의 위치를 잃을까 봐 두려운 게 아닐까. 어느새 불안이 마음을 잠식한 것. 성공의 또 다른 비법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하는 것이다.
페르메이르와 르누아르는 이 깨달음을 그림을 통해 말해 준다. 페르메이르는 우유를 따르는 건강한 하녀, 레이스를 뜨는 데 열중하는 여인, 편지를 읽는 부인 등 일상의 고요한 풍경을 우아하게 담아낸다. 덕분에 그의 그림을 보노라면 햇빛 하나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르누아르는 어떤가. 고양이털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그의 터치와 그림 속 인물들은 인상주의 특유의 화사한 빛 속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한다.
다른 화가들이 인간의 숨겨진 어두운 이면 혹은 진실을 찾아내려 했다면, 이들은 행복이라는 것을 먼 데가 아닌 별다를 것 없는 하루하루 속에서 찾게 해 주었기에 더 의미 있다.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라는 과장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성급한 단답형 정답이 아닌 속 깊은 친구가 건네는 조언을 들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취업의 문, 풀리지 않는 연애, 얄팍한 주머니,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 잠시 이것들을 내려놓고 예술가들의 삶에 귀 기울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