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 - 동물들의 10가지 의례로 배우는 관계와 공존
‘의례’란 기본적으로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과거와 현재, 나와 타인을 이어주는 기술
“가장 친했던 코끼리 두 마리는 완전히 다르게 행동했다. 둘은 죽은 친구 바로 옆에 서서 냄새를 맡고 만져보면서 함께 탐색했다. 이들은 밤새 번갈아 가며 조용히 죽은 친구를 찾아갔다. 절대 죽은 친구를 혼자 누워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갈 때마다 각자 주기적으로 죽은 친구의 몸에 흙을 뿌려 덮어주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죽은 친구의 몸에는 최소한 5밀리미터 이상 두께의 흙이 덮였다. 버넌이 경험했던 코끼리의 장례 의식 중 가장 강렬했다.”
8장 「함께 애도하면서 치유하기_애도 의례」 중에서
흔히 ‘의례’라는 단어를 들으면 종교적인 경건한 의식을 떠올릴 때가 많지만 넓은 의미의 의례는 종교적 관습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의례는 기본적으로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과거와 현재, 나와 타인을 이어주는 일종의 기술을 말한다. 예배, 제사, 결혼식, 장례식, 축제뿐만 아니라 매일 아침 일어나 미지근한 물을 한잔 마시는 것, 매주 토요일 저녁에 한강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모임에 나가는 것도 일종의 의례라고 할 수 있다. 길을 걷다가 발로 돌을 차는 평범한 행동에도 사회적 의미가 깃든다면 의례가 된다.
잃어버린 의례를 되찾는 순간,
삶은 훨씬 평화롭고 충만해진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인간과 동물들의 뇌가 비슷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많은 동물이 인간처럼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영장류 동물학자 제인 구달은 인간의 의례가 침팬지의 의례를 본떠 생겨났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야생동물도, 인간도 살아가는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의례를 행하고 있다. 우리는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도록 진화했기에 사회 공동체 속에서 직접 접촉하며 소통하고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지 못하면 사회적 동물은 시들어 죽고 만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삶의 흔적을 돌아보고 동물처럼 의례를 행하는 삶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의례는 인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어떤 의례는 몇백만 년 동안 멸종 위기를 극복하며 지금까지 살아남아 우리 곁에 공기처럼 존재한다. (가령 미소나 웃음 짓기와 같은 무언 의례는 500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져왔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한, 의례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30년 이상 야생동물을 연구한 동물생태학자의
빛나는 통찰이 담긴 야생 다큐멘터리
저자는 30년 이상 대륙을 떠돌며 야생동물을 관찰하고 연구한 세계적인 코끼리 전문가이다. 역사학, 생물학, 인류학, 심리학, 정치학, 사회학, 철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방대한 지식과 저자만이 전달할 수 있는 생생한 연구 현장 이야기를 아우르는 이 책은 저자가 직접 관찰하고 연구하고 성찰한 결과물들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남편 팀 오코넬과 함께 촬영한 책에 실린 총 37컷의 도판은 믿기 힘들 정도로 생동감이 넘친다.
코뿔소가 뿔을 맞대며 인사하는 모습, 코끼리들이 구덩이에 빠진 새끼를 구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모습, 돛새치 무리가 진을 치고 사냥하는 모습, 기린들이 서로의 목을 감싸며 애정을 나누는 모습 등 저자 부부는 산과 바다, 사막을 가리지 않고 자연을 가르며 야생동물의 반짝이는 장면들을 순간 포착했다. 책 속에서 그는 언제나 동물들을 따라다니지만, 인간 사회에 대한 애정 또한 놓치지 않는다. 더 이상 자정 작용에만 기댈 수 없게 된 지구 위에서 자연과 우리 인간이 ‘공멸’하지 않고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지 빛나는 통찰을 제시한다.
팬데믹, 기후문제, 경제 위기, 전쟁, 계층 갈등, 인종 차별 등 오늘날 전 인류는 유례없이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과학기술은 고도로 발전하고 사회는 점점 복잡해지고 있지만 우리는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잊은 채 살아왔다. 책에서 소개하는 인사, 집단, 구애, 선물, 소리, 무언, 놀이, 애도, 회복, 여행 등 10가지 의례에는 그 ‘무언가’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저자 케이틀린 오코넬은 말한다. 위기 속에서 의례는 “우리의 생명줄이 되어줄 것이며 우리를 행복한 길로 안내해”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