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문화와 불교
불교가 조선에 들어오기는 고구려 제17대 소수림왕(小獸林王) 2년, 즉 지금으로부터 1563년 전 여름 6월에 지나(支那) 5호(五胡)16국의 한 사람인 이전 진왕(秦王) 부견(符堅)이 사자를 보내서 부도순도(浮屠順道)*와 불상 불경을 보내었으니, 이것이 사적에 나타난 조선 불교의 기원이다.
이에 조선 문화와 불교와의 관계를 극히 간단히 고찰해보려 한다.
대개 문화란 것은 주어진 자연의 사실을 일정의 표준에 비추어 지배하며 형성하여 그래서 궁극으로 그 이상을 실현하려는 과정의 총칭이다. 이와같이 과정의 성과(成果) 산물을 문화재라 하니 종교, 학문, 예술, 도덕, 법률, 경제 등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에 뛰어난 자기 특유의 생(生)의 내용을 창조 산출한 것이 문화란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인세(人世)의 개명진전(開明進展)이다
이 문화의 교충점(交衝點)에 처한 조선은 이집트 문화. 메소포타미아 문화 등 서쪽으로 유동해오는 모든 문화를 모조리 받아 가지가지의 문양의 미(美)를 이루었다. 이 인천(人天) 구제의 구경(究竟) 유일한 정법으로 개설된 불교가 들어와서 조선의 꽤 많은 신문화에 위대한 후육력(煦育力)(양육)을 주었음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다. 마치 식물이 일광을 빌어서 동화작용을 하는 것처럼 조선 문화의 싹이 불교의 비침을 받아 숨어있든 생명력을 와짝 발양한 것이다. 잠복하였든 문화적 영능(靈能)이 맹연(猛然)히 발작하여 교학으로 예술로 홍자만천(紅紫萬千)의 성관을 나타내고 그 꽃다움과 그 불꽃은 저절로 사방으로 발산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개괄하면 불교는 조선 문화의 태양으로 그에게 생명과 발전을 준 것이다. 나아가서는 동양문화 아니 세계 문화의 혜성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