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화폐의 진화 - 미네르바의 부엉이

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화폐의 진화 - 미네르바의 부엉이

저자
김수진
출판사
북스타
출판일
2024-10-29
등록일
2024-12-23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142KB
공급사
우리전자책
지원기기
PC PHONE TABLET 프로그램 수동설치 뷰어프로그램 설치 안내
현황
  • 보유 1
  • 대출 0
  • 예약 0

책소개

피카소에게서 배우는




돈의 본질







‘옥석혼효(玉石混淆)’. 옥과 돌이 뒤섞여 있다는 뜻으로 뛰어난 것과 변변치 않은 것이 섞여 있는 상태를 일컫는 사자성어다. 한때 국내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2021년 개정된 특금법(특정 금융 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기 이전에 수많은 코인과 거래소가 난립하던 상황을 옥석혼효에 비유하곤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옥과 돌의 경계선이 애매한 경우도 있다. 시대가 바뀌면 옥이 돌이 되기도 하고, 돌이 후세에 옥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현재는 매우 높이 평가받고 있는 예술가나 작가라도 생전에는 무명씨에 불과했던 이들도 많다. 두 명의 천재 화가인 반 고흐와 피카소의 명성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둘의 삶의 환경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달랐다.




오늘날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해바라기 작품 등으로 유명한 화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살아생전에는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반 고흐가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화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폴 고갱(Paul Gauguin)과의 공동 생활이 파탄으로 끝난 후에 자기 귀를 잘랐다는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고흐는 동생 테오(Theo)의 이해와 지원으로 창작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2,000여 점의 작품 중 생전에 판매된 작품은 단 한 점에 불과했다. 고흐는 세상 사람들의 눈이 썩어서 자신의 그림이 팔리지 않는 것이라고 비관하며 결국 총으로 자살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달랐다. 탁월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천재 화가이기도 했지만, 화가로서 명성을 얻어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을 보냈다. 91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친 피카소는 생전에 가장 부를 많이 축적한 화가로 알려져 있다. 7세 때부터 미술 교사였던 아버지로부터 성실하게 교육을 받은 피카소는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발휘했다. 교직에 있던 아버지가 스스로 더 이상 아들을 감당할 수 없다고 느껴 다시는 붓을 잡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그의 재능이 얼마나 비범했는지를 보여 준다.




피카소는 1973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총 45,000점이 넘는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1900~1973년 사이 약 20곳에 살면서 창작에 바빴던 그는 두 개의 성과 세 개의 저택도 가지고 있었다. 피카소의 유산에 정통한 사람에 따르면, 약 450만 달러의 현금과 130만 달러 상당의 금괴도 있었다고 한다. 주식과 채권도 있었는데 정확한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1980년에 피카소의 재산은 2억 5,000만 달러로 평가되었지만 전문가들은 실제 가치가 수십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피카소가 오늘날 살아 있다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0인 중 한 명이 될 것”이라고 제네바의 유명한 미술상이자 프랑스 소더비즈(Sotheby s)의 전 회장인 마크 블론디어(Marc Blondeau)는 말한다.







자신의 명성을 가능한 한 많은 돈으로 바꾸는 방법




피카소가 돈의 본질에 대한 탁월한 감각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일화가 많다. 피카소는 ‘Pablo Diego Jos? Francisco de Paula Juan Nepomuceno Crisp?n Crispiniano Mar?a de los Remedios de la Sant?sima Trinidad Ruiz Picasso’라는 긴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여러 성인, 외삼촌, 부모 등의 이름을 받아 추가했기 때문에 길어졌다고 한다. 그 이름들을 내세워 피카소는 일가친척과 조력자를 모집해 갔다. 그렇게 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인적 네트워크라고 부르는 관계망을 확장하고 심화해 나갔다.




지폐이건 동전이건 통화 단위는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는 통화 결제 네트워크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그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사용자는 통화의 가치 자체에 대한 신용을 갖게 된다. 피카소는 화폐의 본질, 즉 화폐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언어이자 그 가치는 네트워크와 신용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피카소는 또한 일류 영업 사원이기도 했다. 보통 화가들은 미술상에게 그림을 맡기고 자신은 창작 활동에 몰두하지만 피카소는 달랐다. 그림을 완성하고 나면 미술품 딜러들을 모아 놓고 그림을 보여 주기 전에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그림이 어떤 배경을 담고 있는지, 어떤 마음의 풍경을 묘사하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천천히 시트를 펼쳐 그림을 보여 준다. 그러고 나면 그림에 담긴 스토리가 한눈에 들어와 단순히 그림을 감상할 때보다 훨씬 큰 가치가 느껴지고 감동으로 다가온다. 피카소가 수십 명의 화상을 불러 전시회를 열 때면 작품의 배경이나 의도를 해설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사람들은 작품이라는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얽혀 있는 이야기에 돈을 지급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둘째, 화상이 한자리에 모이면 경쟁 원리가 작용해 작품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요컨대 피카소는 화가로서 재능이 있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돈으로 바꾸는 방법도 훤히 터득하고 있던 비즈니스맨이었다.







그림의 대가를 와인으로 받은 피카소




샤토 무통 로쉴드(Ch?teau Mouton-Rothschild)라는 유명한 와인이 있다. 이 와인 라벨은 매년 유명한 화가가 그렸다. 1973년에는 피카소가 그 라벨을 디자인했는데, 2017년에는 한 병에 약 180만 원이었다. 피카소는 이 와인의 라벨을 그려 준 대가로 돈이 아니라 와인을 달라고 요청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린 라벨 때문에 가격이 급등한 와인을 받게 되면 가치가 더욱 상승할 게 자명하기 때문이었다. 한편, 샤토 측도 거액의 보수를 한꺼번에 치를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었다. 당연히 와인 가격은 해가 갈수록 올라갔다. 그리고 피카소도 창작 활동이 더욱 왕성해졌기 때문에 유명해졌다. 와인의 성숙 연도에 피카소의 상승한 명성을 곱해 가격이 올라간다. 일거양득이지 않은가?




일반적으로 화가는 일단 그림을 처음 팔고 나면 그 후에 아무리 그림이 고가로 거래되더라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와인은 프리미엄이 붙어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그림을 팔고 난 뒤라도 수입이 생긴다. 와인의 가치가 점점 높아지고 게다가 화가인 본인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부가가치가 생긴다. 피카소에게는 자신이 디자인한 라벨이 붙은 와인이 최고의 투자처였던 셈이다.







피카소는 왜 수표를 사용했을까?




피카소는 또한 일상생활에서 소액 결제에 수표를 즐겨 사용했다. 어째서 미술용품과 물감을 구매할 때 수표로 지급했을까?




일반 사람은 수표를 받으면 은행에서 환전한다. 하지만 피카소한테서 받은 수표에는 유명한 피카소의 서명이 새겨져 있어서 주인은 은행에서 현금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피카소는 실제로는 돈을 지급할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피카소의 서명이 지폐를 대신하는 셈이다. 그는 자신의 서명이 화폐 구실을 할 만큼 가치가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피카소와 관련한 에피소드에는 이외에도 많다. 피카소만큼 머리가 비상하게 회전하는 예술가는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천재였다.




그는 사물의 본질을 보았다. 돈은 일반적인 교환 수단이자 인류가 만들어낸 대단히 추상적인 매체이기도 하다. 돈의 가치는 타인이 그것을 돈으로 인식하고 받아주는 데 있다. 즉 자신이 돈을 사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타인이 그것을 받아 주기 때문에 가치가 생성되는 성질을 갖는다. 다른 사람이 돈을 받아 준다고 믿기 때문에 자신도 돈을 받게 된다.




피카소는 ‘돈의 본질=신용’이라는 점을 꿰뚫어 신용을 쌓아 부를 얻었다. 화폐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언어이고, 그 가치는 네트워크와 신용이다. 피카소는 양측 사이에 신뢰 관계만 있으면 돈이라는 매체에 의존하지 않고도 가치를 교환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피카소가 40세 되던 해에는 레스토랑 웨이터로부터 그림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30초 정도 냅킨에 그림을 그린 후 1,000만 원이라고 웨이터한테 전했다. 겨우 30초 정도 만에 그린 그림이 무슨 1,000만 원이나 되냐며 웨이터가 묻자, 피카소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죠. 이 그림은 30초 만에 완성한 게 아니라 40년이라는 세월 동안 30초나 들여 그린 것입니다.”




피카소는 이러한 명언도 남겼다.




“그저 그런 예술가는 모방하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피카소가 역사상 가장 다작 화가라고 불리는 것도 시장에 자신을 팔기 위해 도용에 도용을 거듭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발명왕으로 알려진 에디슨도 다른 기술자의 아이디어나 부하가 생각해 낸 아이디어를 주저하지 않고 포장해 특허를 신청했다. 그가 만든 회사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글로벌 기업으로 존재하는 제너럴 일렉트릭(GE)이라는 사실도 유명하다.




예술가와 작가 중에는 자살하거나 기구한 생을 보낸 사람이 많지만, 피카소는 92세의 장수 인생을 보내게 된다. 죽기 이전 해에도 죽음을 예견한 듯 자화상을 그려 옆에서 보면 충실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생전에 피카소는 “나는 물체를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그린다(I paint objects as I think them, not as I see them).”라고 말한다. 호기심, 탐구심, 새로운 표현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가 그의 창작 활동의 원천이었음을 알 수 있다. 피카소는 다른 예술가들과의 교류와 경쟁, 주변 여성들, 사교 행사 등 다양한 것들을 끊임없이 자신의 영감으로 삼아 예술적 충동을 유지하곤 했다.




피카소는 자신의 명성을 가능한 한 많은 돈으로 바꾸는 방법, 즉 현대 금융에서 신용 창출이라고 부르는 ‘자본화’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기업과 개인이 신용을 갖고 자신의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면 사람들은 돈의 결과보다 신용의 원인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자신의 가치와 신뢰를 창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돈의 유무는 사람의 행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돈의 진정한 본질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자유롭게 삶을 창조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돈을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한 ‘창조적 무기’로 사용하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한다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QUICKSERVIC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