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승과 단천기
김우항(金宇杭)은 숙종대왕(肅宗大王) 때의 유명한 정승이다.
그가 노년에는 일국의 정승이 되어 한 사람 앞에서나 만 명이 모인 앞에서나 삼천리강산을 손에다 폈다 쥐었다 하며 서슬이 푸르게 되어 잘 지냈지만 소년 시절로부터 중년 시절에 이르기까지는 아주 곤궁하기 짝이 없어 그야말로 세끼의 밥도 잘 얻어먹지 못하고 집도 다 허물어진 삼간초옥(三間草屋)에 풍우를 가리지 못하며 옷은 또 현순백결(懸鶉百結)로 다 떨어져 살이 울긋불긋하게 보이니 체면상 출입을 마음대로 잘 할 수 없는 때가 많았었다. -<본문에서>
차상찬 선생은 한국 근대사에서 아주 드믄 언론·출판계의 거목이었고 야인의 기질을 갖춘 민중운동가이기도 했다. 생전에 “왜놈들이 망해서 게다짝을 끌고 도망가는 것을 꼭 보고 말겠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일도 한껏 펼친 텐데…”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사화(史話)ㆍ인물만평(人物漫評)ㆍ사회풍자(社會諷刺)ㆍ만필(漫筆)ㆍ소화(笑話)ㆍ민속설화(民俗說話) 등 다양한 글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