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태조
우리나라의 역대 무인사(戊寅史)를 돌이켜 볼 때에 가장 흥미 있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지금으로부터 일천여 년 전 신라 경명왕 2년(서기 918년) 무인(戊寅) 6월에 왕건 태조(王建太祖)가 고려의 나라를 새로 창건한 것이다.
왕융이 일찍이 한 씨 부인과 결혼하여 한주 송악군(漢州松嶽郡. 지금의 개성) 송악산 남쪽에서 살았더니 하루는 신승 도선(神僧道詵)이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그 집 문 앞에서 쉬다가 하는 말이
“이 땅에서 반드시 성인이 나겠다.”
고 하였더니 융이 듣고 크게 기뻐하며 그를 맞아들이어 특별한 대우를 하니 도선이 글 한 수(首)를 써서 주며 말하되
“당신이 명년에 반드시 귀한 아들을 낳을 터이니 장성하거든 이 글을 주시오…….”
하며 어디론지 가버리고 말았다. -<본문에서>
차상찬 선생은 한국 근대사에서 아주 드믄 언론·출판계의 거목이었고 야인의 기질을 갖춘 민중운동가이기도 했다. 생전에 “왜놈들이 망해서 게다짝을 끌고 도망가는 것을 꼭 보고 말겠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일도 한껏 펼친 텐데…”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사화(史話)ㆍ인물만평(人物漫評)ㆍ사회풍자(社會諷刺)ㆍ만필(漫筆)ㆍ소화(笑話)ㆍ민속설화(民俗說話) 등 다양한 글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