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홉 단편선
체호프는 사실주의 단편 소설의 선구자로, 근대 소설 분야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 소설집엔 체호프가 간결하고 날카롭게 압축해낸 단편 7편을 실었다. 그는 당시 러시아 소설가들이 즐겨 쓰던 만연체와는 선이 다르게 세부 묘사를 절제하고 호방하게 사상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절제했다.
이 소설집에 담긴 소설에서도 그는 관찰자의 태도를 띠면서 간결하게 평범해 보이는 사건을 따라간다. 이는 소설가가 서사의 신으로 군림하는 것과는 분명한 차별점을 지닌 것이다. 그러한 일관된 태도를 견지한 덕분에 그의 많은 단편소설에서 분명한 맥을 지닌 그만의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세부 묘사를 걷어낸 것과 같은 전체 설정에서 순간적으로 카메라를 ‘줌인(Zoom-In)’하여 작가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능수능란하게 제시한다. 그러한 기교 덕분에 체호프는 짧은 서사에서도 충분하게 극적 효과를 얻어내면서 이야기의 의미를 풍부하게 만들어낸다. 단편소설은 어떻게 기법을 활용할 때 이야기의 힘이 극대화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예시로, 우선 <귀여운 여인>을 들 수 있다. 톨스토이에게 절찬 받은 이 작품은 체호프를 러시아 문학계의 중심에 떠오를 수 있게 한 출세작 중 하나다. 그는 이야기에서 해학성을 끌어내는데, 일상의 이면을 보여주면서 따뜻한 느낌을 전달하는가 하면 씁쓸한 뒷맛을 안겨주기도 한다. <귀여운 여인>의 경우엔 전자에 속한다. <귀여운 여인>인 올렌카는 불행한 운명 탓에 여러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흔히 우리가 그러한 여자를 방탕하게 낙인찍게 되는데, 올렌카의 엉뚱할 만큼 인간적인 동정심과 선량함을 대하게 되면 우리의 편견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게 된다. 오히려 올렌카는 보통의 탐욕과는 전혀 다른 것인 진정하고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원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심 없는 그녀의 바보 같은 행동을 보게 될 때 그만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흔히 판단하기 쉬운 전형적인 상황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끄집어낸 체호프는 <귀여운 여인>에서 일반적인 편견을 건드리고 깨닫게 해준다.
그런가 하면 <상자속의 사나이>에 등장하는 벨리코프는 그야말로 우스꽝스러운 인물이다. 지나치게 도덕적이고 어이없을 만큼 이해심이 없는 그를 보면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그를 비웃고 말지만, 장례식에서 그의 친구는 ‘앞으로도 벨리코프 같은 상자 속의 사나이들이 얼마나 많이 나타날까’라고 탄식한다. 그도 그럴 것이 벨리코프의 강박에 가까운 삶은 현대인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외에도 작가는 <약혼녀>, <다락방이 있는 집-어느 화가의 이야기>,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어느 관리의 죽음>, <대학생>에서도 일관되게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서술해가면서도, 전혀 새롭게 그 순간을 바라보게 만드는 재주를 발휘한다. 이는 모범적인 현대 단편소설의 좋은 미덕일 것이다.
지금도 이어지는 체호프의 업적이 그의 작품에 숨어있는지 찾아보면서, 그 해학성에 마음 편히, 때로는 불편하게 웃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