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프랑스 마르세유 출신의 젊은 선원 에드몽 단테스는 약혼녀이자 애인인 메르세데스를 탐낸 적들의 흉계로 14년이나 감옥에 억울하게 수감된다. 그가 선원으로 일했던 파라옹 호가 잠시 나폴레옹이 귀양살이하던 엘바 섬에 들른 적이 있는데 이를 트집 잡아 에드몽에게 나폴레옹과 연계되어 있다는 반역죄의 누명을 씌운 것이다.
이때 11년이나 수감 생활을 하다가 지하 감옥에서 땅굴을 파서 반대쪽 사람 가톨릭교 신부인 파리아 신부를 만나 신부에게서 뛰어난 학식과 무술을 배워서 지식인으로 탈바꿈한다. 또한 파리아 신부는 단테스의 이야기를 듣고서 그가 감옥에 갇히게 된 까닭을 추리하여, 단테스로 하여금 복수의 결의를 새삼스럽게 하게 한다. 두 사람은 차근차근 탈옥 준비를 진행시켜 갔으나, 파리아 신부는 몽테 크리스토 섬에 감추어져 있는 수많은 보물의 비밀을 단테스에게 가르쳐 주고 숨지게 된다. 단테스는 병으로 죽은 파리아 신부의 시신과 자신을 바꿔치기하여 탈옥한다.
감옥에서 파리아 신부에게 들어 알게 된 몬테크리스토섬의 보물을 손에 넣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복수의 화신이 된 단테스는 자신의 돈을 이용하여 몬테 크리스토 백작으로 행세하며 파리 사교계를 주름잡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친구였던 모렐씨에게 큰 돈을 주어 파산으로 인한 몰락을 면하게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고 약혼녀까지 빼앗은 몬데고 백작과 빅토르 검찰총장에게 사교술과 막대한 재산을 이용해 하나하나 파멸시킨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를 계속 사모하고 있는 메르세데스를 행복하게 해 준 뒤 어딘지 모르게 정처 없는 여행길을 나선다.
저자소개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잘 알려진 19세기 프랑스 극작가이자 소설가다. 뒤마는 1802년 7월 24일, 빌레르코트레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1806년 나폴레옹 군의 장군이었던 뒤마의 아버지가 죽자, 뒤마의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어린 뒤마는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로빈슨 크루소』나『아라비안 나이트』와 같은 작품을 읽으며 읽고 쓰는 능력을 길러나갔다. 성인이 된 뒤마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파리로 간다. 파리에서 그는 1823년 오를레앙 공작(후에 루이 필리프 왕) 가문에서 서류 작성하는 일을 얻게 되지만 곧 연극계로 뛰어들었다.
1820년대 말에서 1830년대 초는 패기 넘치는 젊은 뒤마에게 작가로서의 장래를 보장해 준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그는 1828년에 화려한 문체로 프랑스 문예 부흥을 묘사한『앙리 3세와 그의 조정Henri Ⅲ et sa cour』을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시간, 장소, 행동의 3일치라는 고전주의 규칙을 무시하고 운문이 아닌 산문으로 씌어진 전형적인 낭만주의 작품이었다. 1929년 이 작품의 공연은 첫날부터 대성황을 이루었다. 뒤마를 후원한 루이 필립은 매우 흡족해했으며 한때는 극단적인 왕당파였던 빅토르 위고도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작가로서의 뒤마의 출발은 성공적이었다. 이후 20여 년 동안 뒤마는 위고, 비니Vigny와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극작가로 활약했다.
한편 1820년대에는 많은 잡지가 창간되면서 <문예란>에 연재소설이 등장하였다. 뒤마는 연재소설에 매력을 느껴 차츰 극작품보다는 소설, 특히 역사소설을 더 많이 쓰기 시작했다. 그는 일만큼이나 삶의 자극에 탐닉했다. 평범한 일상생활의 권태를 모면하기 위해 그는 연애, 음식, 잠, 쾌락, 여가, 운동 등 여러 방면의 자극을 원했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여행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뒤마는 여자, 오페라, 그리고 지중해에 대한 애정을 키웠고 그런 가운데 그의 대작들이 잉태되어 여행에서 돌아온 이듬해인 1944년에 리슐리외 시대의 모험담인『삼총사Les Trois Mousquetaires』를, 이어서『몬테크리스토 백작Le Comte de Monte-Cristo』을 세상에 내놓았다. 특히『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출간 즉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번역되고 차용되고 표절되는 등, 한마디로 그 시대 최고의 <인기 소설>이 되었다.
『삼총사』와『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성공 후에도 그는 수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여 당시의 가장 인기있는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지만 그의 사생활은 날로 황폐해 가고 있었다. 사치한 생활에 빠져 채권자들에게 돈을 갚기 위해 그는 발자크처럼 날마다 더 많은 글을 써내야 했고, 그 때문에 발자크처럼 방대한 양의 작품들을 후세에 남기게 되었다.
뒤마에게는 또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이어받은 훌륭한 작가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춘희La Dame aux camelias』(1848)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뒤마 2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