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아웃(white out)
이 마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당신이 없는 이 마음은
태초의 신이 만물을 창조하기 전 아니, 훨씬 더 이전의 무(無)로 돌아가는
알 수 없는 아득함이야.
난 아프고, 이 슬픔은 깊고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 이곳은 고통이야.
이젠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다음 생애도 내 선택이 옳았기를…… 그리고 그들의 선택 또한.
그의 사랑은 순결하고 신성했으며 누구도 감히 끼어들 수 없을 만큼 확고했어요.
그는 그녀의 남자였고, 그녀 또한 그의 여자였어요.
그래서 난 두렵지 않아요.
눈보라가 쳐 길을 잃게 된다 해도 그가 있어 난 헤쳐 나갈 수 있어요.
또 다른 화이트 아웃을 만나게 된다 해도 말이에요.
죽음의 끝이 아닌 삶의 시작을, 그리고 영원까지도.
“윤아,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뭔지 아니? 행복, 행복이래. 지천에 널려 있는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이래. 그런데 넌 언제나 행운의 네 잎 클로버만 찾고 있었지. 곁에 있는 날 보지 못하고 다른 곳만 보고 있었던 거야. 그런 너를 보며 난 네 잎 클로버를 찾아 그 잎을 다 떼어버리고 싶었어.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 네 잎 클로버를 찾겠다는 그 소녀를 너무 사랑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바람을 꺾을 수가 없었으니까…….”
시우의 목소리가 어쩐지 습한 공기보다도 더욱 무겁게 젖어 있는 것 같았다.
“스스로 포기한 거야. 누군가가 아닌 스스로가 행복을 포기한 거라고.”
도무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시우의 품 안에서 벗어나려 애쓸 뿐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도대체 뭔데!”
시우는 그저 있는 힘을 다해 부서질 듯 윤을 껴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난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야. 네가 찾지 않아도, 네가 바라보지 않아도 늘 네 곁에 있을 거야.”
윤을 사랑하는 것만이 자신의 운명이고 숙명이라는 듯 시우는 그저 사랑한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사랑해…….”
때 이른 여름의 소나기가 메마른 땅을 적셨다. 플라타너스 아래, 시우와 윤은 그렇게 서 있었다. 시우의 품 안에서 윤은 젖어드는 남자의 눅눅한 비 냄새를 그저 말없이 느끼며 서 있었다. 큼지막한 시우의 손이 윤의 머리 위로 향했다. 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시우의 손바닥 위에서 고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