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나의 이웃 2권
이사온 지 10개월만에 마주친 나의 위험한 이웃, 유재현.
‘도둑처럼 남의 집 앞에서 서성거리길래 절 찾아온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무례하게 굴어서 미안합니다.’
서로에게 안 좋은 감정만 남은 채 헤어지게 된 재현과 도윤.
첫 만남 이후 마주칠 적마다 으르렁 거릴 일 투성이다. 어느 날 둘은 이웃을 넘어 갑과 을의 관계가 되는데…….
위험한 마술사 유재현과 무대 디자이너 서도윤의 계약은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
그리고 둘은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을까?
* * *
“WHEEL of FORTUNE.”
그때 그녀의 앞에 낯선 그림자가 드리웠다.
낯선 타인의 등장에 놀란 도윤이 어깨를 들썩이며 홱 고개를 들었다.
흑석처럼 검은 머리칼과 대조되는 하얀 피부, 찢어진 날카로운 눈매와 날렵한 코, 붉고 얇은 입술과 잘 빠진 턱 선까지 보는 이로 하여금 잠시 넋을 놓게 만드는 출중한 외모를 지닌 남자였다. 더구나 그는 키도 훤칠했다.
일을 하며 많은 연예인과 모델을 가까이서 봐왔지만 이 정도로 첫눈에 도윤의 혼을 쏙 빼놓았던 사람은 없었다. 두어 개쯤 풀려 있는 갈색 체크 남방 사이로는 남자의 하얀 목덜미와 도드라진 목젖이 보였다. 그는 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영화의 한 장면 같단 생각이 들 정도로 행동 하나하나가 우아하면서도 강렬했다.
도윤은 한동안 남자를 빤히 보다가 화들짝 놀라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거 이리 내.”
재현이 미간을 구기며 여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는 지금 누군가와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상태였다. 마음 같아서는 상대가 누구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자신이 아는 온갖 욕설을 퍼붓고 싶을 정도였다.
비서란 놈이 그가 가장 아끼는 한정판 트럼프 카드를 들고 도망간 탓이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그가 비서를 잡기 위해 문도 제대로 잠그지 않고 12층을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지만, 결국 놓치고 말았다.
비서가 내건 조건은 오늘 당장 회사로 교육을 받으러 나오라는 것이었다. 기함할 노릇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재현은 한국 땅을 밟은 지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그의 성격대로라면 가볍게 무시해 주고 넘길 일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하필 인질로 삼은 것이 그가 가장 아끼는 카드였으니 말이다. 늘 괴롭히던 비서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은 탓에 재현의 속에선 불길이 치밀고 있었다.
“네?”
그는 누군가가 자신의 물건을 만지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헌데 가장 가까이에 두고 있는 비서란 놈은 그가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트럼프 카드를 훔쳐 갔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눈앞에 있는 낯선 여자는 어디서 흘린 것인지 모를 그의 타로 카드 중 한 장을 들고 있었다.
도윤이 되묻는 말에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판단한 재현은 그녀의 손에 들린 카드를 세차게 낚아채 갔다. 그런 그의 성격을 알 리 없는 도윤은 남자의 무례한 태도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거 주운 거예요. 여기 떨어져 있었어요.”
괜히 머쓱해진 도윤은 자신의 발밑을 가리키며 자신이 카드를 들고 있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 집엔 무슨 일이지?”
재현은 타로 카드에 더러운 이물질이 묻은 것처럼 툭툭 털고는 제 바지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재현에게는 지금 이 상황들이 무척 귀찮고 짜증났다. 한가롭게 여자의 변명을 들어줄 여유도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한정판 트럼프 카드를 되찾는 일과, 비서를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날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기분대로 행동하는 재현의 말투가 이 상황에서 곱게 나올 리도 없었다.
“……여기 사세요?”
재현의 무감정한 시선과 말투에 도윤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스레 주눅이 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반쯤 열린 이웃집의 현관을 한번 쳐다보았다. 이 집의 주인이라면 그것은 곧 자신의 이웃이란 공식을 깨달은 도윤이 토끼눈을 떴다.
“너, 내 팬이야?”
도윤이 자신을 소개하기도 전에 재현의 날카로운 말이 먼저 들려왔다.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남자의 무례한 하대가 계속 귀에 거슬렸지만, 지금 그보다 더 신경 쓰인 것은 ‘팬’이라는 단어였다. 그러고 보니 남자의 잘생긴 외모는 연예인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연예인일 것 같단 생각을 하긴 했지만, 평소 텔레비전을 즐겨 보지 않는 편인 도윤이 아는 연예인이라고는 아트홀과 계약한 가수나 모델들, 대규모 팬 미팅을 할 정도의 스타들뿐이었다. 그 중에서 이런 남자를 본 적이 없으니, 그녀가 그를 알아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저는 여기 사는데요.”
도윤이 퉁명스럽게 자신의 집을 가리키자, 재현의 시선도 그녀의 손가락을 따랐다.
“아.”
저자 : 조아미
다음 카페 ‘도시의 숨결’ 거주 중.
글을 쓸 때 가장 ‘살아있음’을 느끼기에
앞으로도 글을 놓지 못할 글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