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천천히
세상만사 다 귀찮은 귀차니즘 환자, 정하.
대타로 나간 맞선 자리에서 그녀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 세륜을 만났다.
“사랑하는 사람 없고, 편히 살 거면 대충 사귀는 척하다가 결혼하죠? 평상시에 가정을 갖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었지만 부모님과의 의절은 할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네?”
“편한 시간을 갖고 상견례 시간을 잡죠? 전 아이도 가질 생각도 없고, 어차피 사랑해서 하는 결혼도 아니니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더라도 전혀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부부생활에 따른 성생활도 전혀 없을 겁니다.”
그의 말에 그녀의 입이 더욱 크게 벌어졌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누군가가 저에게 터치하는 것은 병적으로 싫어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앞의 남자는 만만치 않은 성격인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 키 크고, 잘생기고 매너까지 좋은데다 유능하기까지 하니 그녀의 기가 죽는 것도 당연했다. 거기다 부잣집 외동딸 성주하가 아닌 백수 이정하라는 것까지 들키고 말았다.
“사진 기술의 힘인지, 화장 기술의 힘인지 모르겠지만 사진 상의 얼굴과는 스스로 많이 다른 걸 알고 있나 봐요?”
“네?”
“내 눈도 제대로 못 맞추잖아요. 뭐, 사진 속의 주인공보다는 훨씬 미인이기는 하네요. 뭐, 실물이 다른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실제로 보니까 성형한 것 같진 않네요. 코가 굉장히 맨질하게 잡혀 있어서 의술의 힘을 빌린 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