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때는 단군 기원 4240년(서기 1907년) 몇 해 어느 달, 어느 날이던가, 땅은 서울이던가, 해외 어디던가, 도무지 기억할 수 없는데, 이 몸은 어디로 해서 왔는지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크나큰 무궁화 몇만 길 되는 가지 위 넓기가 큰 방만한 꽃송이에 앉았더라.
별안간 하늘 한복판이 딱 갈라지며 그 속에서 불그레한 광선이 뻗쳐 나오더니 하늘에 테를 지어 두르고 그 위에 뭉글뭉글한 고운 구름으로 갓을 쓰고 그 광선보다 더 고운 빛으로 두루마기를 지어 입은 한 천관(天官)이 앉아 오른손으로 번개 칼을 휘두르며 우레 같은 소리로 말하여 가로되,
“인간에게는 싸움뿐이니라. 싸움에 이기면 살고 지면 죽나니 신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그 소리가 딱 그치며, 광선도 천관도 다 간 곳이 없고 햇살이 탁 퍼지며 온 바닥이 반듯하더니 이제는 사람 소리가 시작된다. 동편으로 닷 동달이 갖춘 빛에 둥근 테를 두른 오원기(五員旗)가 뜨며 그 기 밑에 사람이 덮여 오는데 머리에 쓴 것과 몸에 장속(裝束)한 것이 모두 이상하나 말소리를 들으니 분명한 우리나라 사람이요, 다만 신체의 장건(壯健)과 위풍의 늠름함이 전에 보지 못한 이들이다.
저자소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
1880년 12월 8일 충청남도에서 태어나, 1897년 성균관에 들어가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되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에 논설을 쓰기 시작했고,《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활약했다. 1907년에는 신민회와 국채보상운동 등에 참가했다.
1910년 4월 중국 칭다오로 망명, 그곳에서 안창호, 이갑 등과 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했다.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권업신문》에서 활동했고, 1914년 이 신문이 강제 폐간되자, 남북 만주와 백두산 등 한국 민족의 고대 활동 무대를 답사했다. 1915년 상하이로 가서 신한청년회 조직에 참가하고, 박달학원의 설립과 운영에도 힘썼다.
1919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가, 의정원 의원, 전원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나, 한성임정 정통론과 이승만 배척운동을 내세워 사퇴하였다. 그 후 비밀결사 대동청년단 단장, 신대한청년동맹 부단주 등을 지냈다.
1923년 임시정부 창조파의 주동 역할을 하다가, 다시 베이징으로 쫓겨가 다물단을 조직했으며, 중국과 본국의 신문에 논설과 역사논문을 발표하였다. 1928년 일경에게 체포되어 대련 감옥에 수감되었고, 1936년 옥사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저서로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 《조선사연구초》, 《조선사론》, 《이탈리아 건국삼걸전》, 《을지문덕전》, 《이순신전》, 《동국거걸최도통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