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채털리 부인의 사랑》(Lady Chatterley's Lover)은 영국의 소설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의 소설로서 1928년에 쓰여졌다. 하지만 소설에 부분적으로 묘사된 혹은 암시하는 성관계 장면 때문에 당시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로렌스가 병마와 싸우는 힘든 상황에서 쓴 작품으로 그의 마지막 장편 소설이다. 로렌스는《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1926년 10월에서 1927년 여름에 걸쳐 비슷한 주제로 두 편의 소설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출판이 금지되어 1928년에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서 첫 출판되었으며, 로렌스 사후 거의 30년이 지나서야 미국과 영국에서 합법적으로 출판이 되었다.
교양있는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콘스탄스는 잉글랜드 중부의 부유한 지주이자 지성인인 클리포드 경과 결혼한다. 하지만 클리포드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입은 부상으로 하반신 불구가 된다. 콘스탄스는 남편을 간호하고 그가 소설을 쓰는데 도움을 주며 생활하지만 마음의 병을 얻어 건강이 나빠지게 된다. 콘스탄스는 남편의 사냥터지기인 올리버 멜로스와 사랑에 빠지고 멜로스의 아이를 임신하자 남편을 떠나 여행을 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콘스탄스는 멜로스와 잠시 떨어져 이혼 후 둘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을 다짐한다.
저자소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저자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는 영국 소설가이다. 1885년 노팅엄셔의 이스트우드에서 광부인 아서 존과 교사이자 시인이었던 리디아 로렌스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약한 몸과 가난한 성장 환경에도 불구하고 1898년 장학생으로 노팅엄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회사의 서기와 초등학교 임시 교사를 거쳐 21세에 노팅엄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 진학했다. 1908년 이스트우드를 떠나 크로이든의 데이비드슨로드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교사 생활 중에도 틈틈이 시와 단편소설을 썼다.
첫 번째 소설 『하얀 공작』이 1911년에 출간되었으나 이 시기에 폐렴에 걸린 이후 평생 동안 폐질환으로 고통을 받았다. 1912년 그가 공부했던 노팅엄셔 칼리지 교수의 부인이자 여섯 살 연상의 독일인 여인 프리다 위클리와 사랑에 빠져 함께 독일과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1914년 영국으로 돌아와 결혼식을 올렸다. 1913년 『아들과 연인』을 출간했고 1915년에 출판한 『무지개』가 노골적인 성(性) 묘사를 이유로 발매가 금지되면서 1917년에 완성한 『사랑하는 여인들』도 이후 3년간 출판사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 전역과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멕시코 등지를 여행했고, 1922년에 『아론의 지팡이』, 1923년에는 『여우』, 『대위의 인형』, 『무당벌레』가 출판되었다. 1924년 아버지가 사망하고 프리다와 함께 멕시코에서 지내는 동안 말라리아와 이질에 걸려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후 다시 폐결핵 진단을 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허약했던 체질과 폐렴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성(性)의 신비를 통해 병든 현대문명을 고발하고자 끝없는 방랑생활을 감수하면서 작품을 추구한 천재 작가 로렌스. 그의 부모님은 계급과 지적 수준 차이로 인한 불화가 끊이지 않았고, 그의 어머니는 이에 대한 보상심리로 아들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퍼부었다. 이러한 그의 가정환경은 그의 자전소설 『아들과 연인』에 자세히 담겨 있다.
1928년 로렌스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출판사에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자비로 펴냈다. 영어를 모르는 이탈리아 조판공은 이 소설이 섹스에 관한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그런 건 매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초판 100부를 찍은 후 로렌스는 이 책을 가까운 친구들에게 2파운드씩 받고 팔았다. 그러나 점차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퍼지자 수요와 공급에 문제가 생겼고, 이 때 해적판 출판업자들이 해결사로 나섰다. 런던뿐만 아니라 대서양 건너 뉴욕에서도 해적판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15달러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단속을 나온 경관에게 이 책을 선물로 주고 무마했다는 서점 주인도 있을 정도였다.
1925년에 유럽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지냈다.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1928년에 제3판이 완성된 그의 마지막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완성 직후 이탈리아에서 자비로 출판하여 친구들을 통해 배포했지만 많은 부수가 미국과 영국에서 행정당국에 의해 몰수되었고, 영국에서는 외설 시비로 인해 오랜 재판을 거친 후 1960년에야 비로소 최초의 무삭제판이 펭귄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1930년 폐결핵으로 프랑스 남부의 방스에서 44세의 젊은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