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가락지를 찾아서
골동품 속에서 찾아낸 아름다운 이야기
은가락지, 그 영원한 언약의 정표. 세월에 무르녹아 옹이가 된 할머니의 왼손 약지를 보고 소녀의 감성은 나비처럼 훨훨 날았더랬는데.
미군 병사와 한국 미망인의 사랑. 며느리가 낳은 혼혈아에게 외짝 은가락지를 정표로 주었다는 시어머니의 이야기는 실화이다. 때로는 실화가 소설보다 더 진짜 아닌 가짜로 비칠 때가 있다. 가짜일지라도 진짜로 이끌어 인간의 마음을 데워야 하는 게 소설의 미학이라면, ‘순은의 진수’인 은가락지야말로 진실을 담은 정표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6.25 전쟁은 글쓰기에 합당한 구실이 되고 관심을 끄는 초점의 대상이 되는 건지. 동족상쟁의 무시무시한 증오와 갈등은 비록 대한민국의 종말이 오는 그날까지 영원히 풀어야 하고 보듬고 싸매야 하는 명제라고 하신 선배 작가님의 보살핌에 힘입어 감히 용기를 내어 다시금 작품을 출간하기로 결심했다.
날이 갈수록 6.25 당시 우리나라를 도운 외국 군인들이 새삼 고맙다. 그분들이 아니었더라면 우리 국민들은 자유를 누리기도, 눈부신 경제 발전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흥남 철수 때 피난만 1만 4천 명을 태우고 거제도항에 도착하게 한 메러디스 박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님과 선원들에게 고마운 마음 이를 데 없다. 그분들의 용기와 헌신을 이 작품에 담은 건 나의 복인지도 모른다.
나의 작품이 6.25 전쟁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분들에게 위안이 된다면 참 좋겠다. 더불어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성이 있는 한 이 세상의 모든 걸 이기며 견디는 삶의 길잡이가 된다는 걸 감히 고백하고 싶다.
한동안 골동품에 빠져 서울의 인사동과 청계천, 장한평을 오락가락했다. 그건 시골에서 자란 나의 어린 시절을 되살리고픈 갈망이었을 것이다. 골동품은 바로 우리의 손때가 묻은 발자취가 아닐는지. 나는 그저 보는 것으로 즐겼으나 동행했던 친구는 어느새 민속품 수집가가 되었고, 그 즐거움을 친구랑 나누기엔 너무 아까워, 소설로 엮어 세상에 얼굴을 내밀고 싶었다.
나의 글에 윤기를 더한 친구가 참 고맙다. 넉넉하게 고운 자세로 일깨우는 그의 모습도.
처음 이 작품집을 낸 뒤 무언가 아쉬움이 등줄기를 쏴아 훑고 있었는데 그게 내내 나를 괴롭혔다. 나의 부족한 글쓰기에 대한 회한이기도 하고 우리의 출판 풍토의 냉혹한 현실에 맞부딪쳐야 하는 싸늘함이었다. 그런데도 그나마 위로가 된 건 문학사상사의 여러분들이 나의 작품을 잘 출간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골동품 사진과 함께 여러 번 글 내용을 고치고 또 고쳐도 인내로 감수해 주신 분들에게 진정 나의 고마움을 전한다.
부족한 글에 용기를 북돋아주신 최혜실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예쁘게 책을 꾸며주신 문학사상사 여러분들께도 새삼 저의 따스한 마음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