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과 소녀의 일기
4·19혁명에 대한 소녀의 생생한 일기를 엮은 최초의 책!
역사의 가치를 상실해 가는 시대에 던지는 역사 이야기
여고 2학년이었던 학생이 이제는 할머니가 되었지만, 정신이 아직 살아 있을 때 학생과 국민들에게 쉽고 이해 빠르게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전해 주고 싶어 다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세월은 계절 따라 산천을 물들이는 변화의 모습을 수없이 지나오면서 매년 또다시 4월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4·19혁명은 데모 몇 번 하였다고 일어난 혁명이 결코 아닙니다. 12년간 오로지 정권연장을 위한 온갖 부정 불법행위로 쌓여 온 울분과 분노가 하늘을 찌를 뜻한 요원의 불길처럼 밀려와 일어난 것이 4·19혁명입니다.
전 세계에서 순수한 학생혁명이 일어난 곳은 ‘대한민국’뿐입니다.
학생들의 정의감이 위대한 민주주의를 승리로 이끈 역사를 후손들이 올바로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4·19혁명은 또한 세계가 놀랄 정도로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민주화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앞장섰던 4·19혁명은 정권의 야욕이 있어 일어난 것이 아니고, 정치에 어린 학생들까지 이용함에 분개하여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다치거나 죽어도 개의치 아니하고 오로지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전국 곳곳에서 일제히 일어났던 것이 바로 4·19혁명입니다. 각 지방마다 학생들의 열기는 더해 갔고 거리마다에는 어른들이 합세하며 어우러졌습니다. 갈수록 힘이 거세졌고 일부 어른들은 열심히 응원하며 물도 떠다 주는 사람도 있고 손수건도 건네주고 끝까지 같이 하나가 되어 움직였습니다.
연일 곳곳에서 발생하는 시위로 많은 살생이 발생하자 전국에 계엄령이 내려지기까지 했습니다. 국민들이 참담한 심정으로 계엄령을 지켜보고 있을 때, 4월 25일 300여 명의 대학교수들이 일어나 ‘제자들의 피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플랜카드를 앞세우고 거리로 나온 것이 국민들의 가슴에 다시 불을 당겨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용기를 얻은 국민들은 다음 날 26일 아침 일찍부터 거리로 나와 광화문을 중심으로 몰려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서울뿐만이 아니고 각 지방에서도 일제히 같은 마음으로 결의문을 발표하고 성명서를 내고 학생뿐 아니라 국민 전체가 곳곳에서 계엄령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거리로 나왔던 것입니다.
일부 학생대표들이 대통령을 만났고, 매카나기 미국대사 등이 대통령을 만나 현실을 설명하고 대통령이 하야하는 길밖에 없음을 강한 어조로 대화하였다고 합니다. 드디어 26일 대통령이 하야를 하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4·19혁명은 나라의 질서를 잡으려는 정의감 하나만으로 맨주먹으로 항쟁하다 피를 본 혁명이었습니다. 186명의 사망자와 6,300여 명의 부상자라는 희생의 대가를 치루고 혁명의 기쁨을 안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