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1 (영문판)
공포와 매력의 양면성을 가진 존재
고딕 소설의 대명사, 드라큘라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흡혈귀 소설의 고전으로 현재까지도 수많은 변형을 거듭하며 소설과 영화, 만화 등으로 재탄생되고 있다. 작가 브램 스토커는 어린 시절 매우 병약한 아이여서 일곱 살까지는 침대에 누워서 지내야 했고, 당시 스토커의 어머니는 누워 있는 아들이 심심할까 봐 아일랜드의 온갖 전설과 귀신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이것이 훗날 스토커가 《드라큘라》를 쓰는 자양분이 되었다. 애초에 이 책의 제목은 “불사귀(Undead)”였으나, 자료를 조사하던 중 왈라키아의 군주 블라드 드라큘 이야기를 접하고 깊은 인상을 받아 “드라큘라”라는 제목을 짓는다.
소설 《드라큘라》는 고딕 소설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고딕 소설이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성행했던 소설의 한 장르로, 중세 고딕 풍의 폐허가 된 고성을 배경으로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해 기괴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포소설을 일컫는 말이다. 당시 영국 빅토리아 시대는 산업혁명이 절정에 달해, 런던 도처에는 공장 굴뚝이 즐비하고 소설 속 반 헬싱 박사가 말하듯 ‘매연’이 심각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업혁명을 일으킨 영국은 유례없이 번영하며 산업구조와 경제구조가 급격하게 바뀌고, 과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해 전통적인 종교 사상을 뒤흔들고, 상인 계층이 대두해 기존의 사회 질서가 바뀌는 격동기에 있었다. 그때는 ‘이성의 시대’라 불릴 만큼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이성을 신봉하던 시대였다. 그 이면에 놓인 비합리적인 욕망과 사악한 충동을 표현하기 위해 초자연적이고 비합리적인 소재를 이용한 것이 바로 고딕 소설이다.
《드라큘라》 역시 초반은 트란실바니아에 위치한 음산한 고성을 배경으로 고딕 소설 특유의 공포심을 한껏 자아내지만 배경은 곧 현대 런던으로 바뀌며 미신이 우글거리는 트란실바니아와 과학적인 합리성이 중요시되는 런던이 대비된다. 이 소설의 커다란 골자를 이루는 틀은 드라큘라 백작으로 대변되는 과거, 미신, 이교도, 초자연적인 존재를 현대이자 과학, 기독교, 이성으로 대변되는 아브라함 반 헬싱 박사 무리가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결국 과학이 급진적으로 발전했지만 여전히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외세의 역침략에 대한 빅토리아 시대의 불안감을 반영한 것이자 서구의 기독교관과 과학이 우월하다는 당대인의 믿음이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하나 이 소설에서 눈여겨 볼 점은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관과 성(性)이다. 빅토리아 시대에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여성상은 소설 속에서 묘사되듯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처녀’ 루시와 ‘순종적인 아내이자 자애로운 어머니’ 미나이며 여성의 성적인 욕망은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드라큘라 백작의 ‘흡혈귀의 세례’를 받은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루시가 ‘관능적이고 유혹적인’ 모습을 드러내자 주위 남자들이 극심한 혐오감에 떠는 모습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처음 조너선 하커가 드라큘라 성에 머물 당시, 세 여자 흡혈귀 역시 관능적인 미모로 조너선을 유혹하고 피를 빠는 행위를 ‘키스한다’고 표현하는데 조너선은 저도 모르게 이들의 ‘키스’를 바란다. 흡혈귀를 혐오하고 흡혈귀를 지상에서 없애겠다는 숭고한 목적의식이 투철한 아브라함 반 헬싱 박사마저 세 여자 흡혈귀를 없애려는 순간 저도 모르게 매혹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 드라큘라 백작, 흡혈귀가 의미하는 또 하나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의 억압되고 금지된 성적 욕망과 충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