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가 뭐길래 - 글로벌 문화변동과 K-컬처의 진화
한류를 제대로 이해하는 두 층위, 이동·유통과 팬덤
한국 대중문화의 초국가적인 이동·유통과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외국 수용자들의 팬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우선적으로 던지는 메시지는 한류 현상에 대한 올바른 관점, 즉 한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저자는 2001년부터 6년가량 싱가포르에 거주할 때 주변 동남아 국가들을 자주 방문하면서 이들 지역에서 한국 드라마·가요의 유통과 소비가 증가하고 팬덤이 확대함에 따라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태도가 우호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관찰하면서 2013년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한류에 대한 정의를 내린 바 있다.
한국 대중문화의 초국가적인 이동·유통과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외국 수용자들의 팬덤이라는 두 개의 서로 밀접히 관련된 층위로 구성된 문화 현상.
저자의 이 같은 진단은 한국 대중문화 상품이 특정 국가에 수출된다고 하더라도 해당 국가 수용자들의 애호와 적극적 소비가 없다면 한류로 볼 수 없다고 설명한다. 또한 한류에 관한 연구가 ‘무엇이 어디에서 발생했다’를 보고하는 수준과 형식에 그쳐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하며. 현상에 대한 두꺼운 묘사(thick description)와 함께 현상의 여러 동인과 요소를 맥락화해 탐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한류의 출발점이 된 1990년대 전 지구화에 따른 미디어 시장의 개방, 신자유주의의 부상과 디지털화, 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한국 사회의 노력, 정치 민주화에 따른 창작환경 개선, 창의 인력의 문화산업 유입, 한국 콘텐츠의 오락적 역량 강화, 한국 문화상품을 선택한 각국의 시장 상황, 인터넷과 플랫폼 발달에 따른 콘텐츠 접근성의 강화, 기술적 수단(자동 번역과 자막 장치 등)의 구현, 문화 매개자의 역량과 기능 등등을 통합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정부가 주도한 콘텐츠 수출 행위’, ‘한국에서 발생한 독특한 초국가적 문화 현상’,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문화산업 지원정책을 바탕으로 음악, 드라마, 영화, 게임 등 다양한 장르의 한국 문화콘텐츠들의 동시다발적 해외 진출’ 등으로 한류를 정의하고 있는 여러 시각들을 비판한다. 저자의 이러한 비판은 한류 현상의 핵심인 해외에서의 유행과 소비를 경시함으로써 한류 현상에 내재한 국제성을 간과하고 있는 점과 한류에 대한 자국중심주의적 태도를 겨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저자는 이 책 『한류가 뭐길래』 서문에서 “서구에 의해 지배되어 온 국제문화 흐름의 구조를 뒤흔드는 문화 실천인가 아니면 실체가 부풀려진 환상 가득한 ‘국뽕’의 신기루인가.” 하는 화두를 던지며 한류라는 특정 현상이 문화에 관해, 국제관계에 관해 그리고 인문지리적 상상과 관련해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는 ‘생각의 곳간’이라는 관점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주요 담론인 한류를 인문주의의 태도로 고찰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류를 읽는 다섯 가지 키워드!
문화 현상으로서의 한류, 한류 발생의 복합 요인성, 위치성, 관계성, 혼종성
이 책 『한류가 뭐길래』의 중심 내용은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 문화 현상으로서의 한류에 대한 담론은 앞서 얘기한 한류의 정의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저자는 이제는 한류를 문화 현상으로서의 한류와 산업으로서의 한류로 나누어 정의할 수도 있게 되었다고 진단하며, 한류가 해외에서 펼쳐진 한국 문화상품을 좋아하는 유행이자 현지의 대중문화 현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20세기 말 시장개방과 미디어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 문화상품을 받아들인 동아시아 수용자가 1997~98년경부터 한류 현상이라 칭할 만한 문화적 반응을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둘째는 한류 발생의 복합 요인성이다. 이 대목에 대해 저자의 시선은 단호하다. 한류가 정부가 기획해 만든 문화 현상이라는 시각은 다양한 요소가 얽혀 파생된 여러 문화적 현상의 총체적 결과임을 간과하는 근시안적 사고일 뿐이라는 비판한다. 나아가 정부가 처음부터 한류 현상을 기획했다거나 하는 식의 주장은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불가측성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대중문화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종의 ‘음모론’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정부의 역할과 관련해서는, 한류의 경제적, 외교적 효용이 확인된 후에야 정부 각 기관이 한류를 이용하거나 진흥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그러면서 저자는 한류 현상의 복합 요인을 종합적으로 제시한다. 시장에서 성공하려는 문화 기획자와 생산자의 야망, 연예계에서 입신하려는 젊은이들의 땀과 눈물, 문화 간 소통에 능하고 비즈니스에 열정적인 문화 매개자의 역할, 한국 문화 텍스트에 공감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해외 수용자의 존재 등의 요인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제공한다.
세 번째인 한류의 위치성에 대해서는 문화 다식가(cultural omnivores)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다. 즉 “한류가 세계를 정복하고 있다.”라는 식의 ‘국뽕’을 자극하는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와는 달리 실제로는 케이팝 및 한국 드라마가 해외에서 외국 수용자가 선택하는 수많은 문화 메뉴 중 하나라는 것이다. 동남아 국가에 한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중국·일본 문화 등 다른 나라 문화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외국 문화 수용자 모두가 문화다식가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이 부분과 관련해, 저자는 국뽕을 고취하는 시도나 태도는 장기적으로 한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다고 경고하면서, 문화 수용의 주체인 현지인과 현지 문화에 대한 존중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네 번째는 이문화와의 관계성으로 무척 흥미로운 문화 현상을 엿볼 수 있는 측면이다. 이를테면 먼저 진입한 유사한 성격의 타국 문화나 특정한 문화 매개자로 인해 한류가 촉발되는 의외성과 ‘징검다리’ 효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한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요인에 의해 특정 문화가 돌출하곤 하는 대중문화의 불가측성 측면에서 이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는 2006년 브라질에서 〈겨울연가〉가 갑자기 인기를 끌게 된 이유를 소개하고 있는데, 일본 사회를 경험하고 돌아온 브라질의 일본인 3세들이 일본에서의 〈겨울연가〉 인기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한일전 승리’로 해석하기도 했는데, 이는 이문화 간 ‘관계성’과 ‘징검다리 효과’를 이해하지 못하는 단견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문화의 혼종성이다. 인류 역사 자체가 혼종화(hybridization) 과정이라고 규정한 인류학자 한네르츠(Ulf Hannerz)의 얘기처럼 섞이고 버무려지고 새롭게 융합되고 재창조되는 과정을 빼고서는 통합적으로 문화 현상을 고찰하기는 어렵다. 이 대목과 관련해 저자는 오랜 기간의 혼종을 거친 한국 문화가 식민주의, 전쟁, 독재, 민주화와 산업화 등을 거치며 역사적 경험이 녹아든 콘텐츠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설명한다. 또 이것의 결과물이 인류의 보편적 정서와 맞닿아 글로벌 대중문화에 큰 획을 긋는 한류가 발생했고 지금껏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 대중문화의 커다란 흐름과 변화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즐거움
한류가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감수성과 포용성을 강화하고 타문화에 개방적인 자세 함양
이 책을 읽는 가장 즐거움을 꼽으라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드라마, 케이팝, 영화, 카툰 등의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변천사와 함께 그 구체적인 흐름을 파노라마처럼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한류 혹은 한국 대중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한 안내서 역할을 하고 있다. 거기에 한국 콘텐츠를 통해 상상적으로 연결된 글로벌 K-컬처 시대의 흥미진진한 나비효과와 다양한 에피소드를 접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대중문화의 숨결과 변화상을 내밀하게 관찰할 뿐 아니라 시대상을 반영한 문화의 속살과 디테일과 만날 수 있다. 특히 드라마나 케이팝 진화 과정의 역동성을 다채롭게 살피는 것을 비롯해 다나카상의 인기, 쯔위 사건의 전모, 차이니즈 뉴 이어 논쟁, 강남스타일의 미국 반응, 대문호 코엘류의 한류 인식, 각국 한류 팬들의 사례 등등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또 이 책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는 저자의 시선을 지면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데, 이 대목이 『한류가 뭐길래』를 읽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저자는 한류가 산업적 효과 이상의 효능을 지닌다고 의견을 밝히며 한류라는 흐름에 얹혀 우리에게 되돌아오는(還流) 의식과 태도를 강조한다. 그것은 타국 사람들이 한국 대중문화를 받아들이고 열광하듯이 한국인 역시 인종적 감수성과 포용성을 강화해 타문화에 더욱 개방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곧 문화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는 자세이며, 한류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지혜라고 충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