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암 최익현은 과연 시대에 뒤처진 인물이었을까
면암 최익현은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을까?
그는 오늘날 대부분의 국민에게 존경받는다. 전국 각지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일제가 주는 음식은 먹지 않겠다!”던 외고집으로 단식 끝에 순절하신 면암 선생의 기개를 숭고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그를 역사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여긴다. 왜냐하면 그가 조선의 고위 관료로서 일본 제국주의의 폭압을 막지 못했고, 서구의 근대 사상과 기술을 배척하며 기존 고루한 유교적 질서를 고수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저자는 둘 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은 그의 올곧은 신념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뒤떨어졌던 한계를 지닌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인류가 밟아온 역사 속 모든 인물은, 정말 극히 일부 인물을 제외하곤 양면성이 있다. 심지어 이완용도 러일전쟁(1904)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독립협회 설립(1896) 등 애국적 활동을 했고, 나라를 팔아먹고 난 뒤인 일제강점기에도 고종의 신임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이완용과는 결이 다르지만, 면암 최익현도 이처럼 양면성과 관련한 논란이 많기에, 이 논문에서는 최익현 선생 업적의 잘잘못을 따질 생각은 없다. 그리고 저자가 그럴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