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한 번쯤은 파리지앵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무심한 저녁이었다.
가랑비가 먼지처럼 가늘게 흩어졌다.
사무실에 혼자 있던 나는 가방도 챙기지 않고 터덜터덜 밖으로 기어나왔다.
가랑비가 티셔츠 사이로 소리 없이 밀고 들어왔다.
시원했다.
그날 나는, 내가 곧 이 치열한 마감 전선에서 물러날 것임을 예감했다.
내 병은 내가 잘 알고 있었고, 처방전도 이미 가지고 있었다.
“너무 오래 현실에 머물렀던 거야. 이젠 좀 더 용감해지고 싶어.”
가랑비 사이를 한참 걸어다니던 서른여섯 살 여자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래, 이제 떠나는 거야! 어디로든, 아무렇게나.”
반듯했던 삶에 일부러 흠집을 내고 떠난 배낭여행
지금 필요한 건 호흡을 고르고 나를 사랑해 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