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벌포의
손 생원(孫生員)은 난생 처음 어려운 길을 걷는 것이었다. 서울을 떠난 지 이미 열흘이 지났건만 아직도 강원도 땅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뜨거운 염천이라 한낮에 걷는 거리란 불과 몇십 리에 지나지 못하는데다가 나날이 기진역진하여가는 것이 현저히 나타나는 것이었다. 더구나 길이 험하고 자갈 많은 강원도 산길은 그에게 여간 고생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본문에서>
윤백남은 금융인으로 출발하여 언론인ㆍ연극인ㆍ교육자ㆍ문인ㆍ영화인ㆍ만담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특히 그는 영화계에 선구적 공적을 남겼고 연극인으로서도 초창기에 극단을 주재하고 희곡을 쓰는 등 신파극을 정화하려고 노력하였다.
그의 작품은 초기에는 계몽주의적·인도주의적 경향을 띠었으며, 또한 경향 소설적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역사소설이나 야담류로 흘렀고, 후기에는 본격적인 야담가로 나섰다.
대부분 정사(正史)를 바탕으로 한 숨겨진 역사의 뒷이야기나, 구전설화, 시대를 대표하는 풍자적, 해학적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