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침대의 무게 - 고전SF 단편집
동서양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과학소설의 원류
영국, 미국,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까지.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거장들의 고전 과학소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수록작의 다수는 휴고 건스백이 SF잡지를 창간하고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와 겹쳐진다. 과학소설의 발전은 곧 현대 장르소설의 융성과도 거의 때를 같이 하므로 이 단편집은 장르소설의 태동기를 상징하는 하나의 이정표와도 같은 셈이다.
비록 장르소설이 발전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작품 「K박사의 연구」는 이러한 시대 상황과는 맞지 않는 예외적인 입장이지만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뜻에서 수록했다.
◇ 멜론타 타우타 / 에드거 앨런 포 (1849)
포의 단편집은 수없이 나왔으나 수록작은 천편일률로 중복되고 있는 가운데 이 단편은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우울과 몽상』에 실린 게 유일하지만 번역의 질은 아쉬운 점이 많다). 본 번역판은 원래 제목을 살렸으며 주석을 보강했다. 미래인의 관점에서 당시 미국, 나아가 인류를 비판하고 풍자한 미래소설.
◇ K박사의 연구 / 김동인 (1929)
큰 이견이 없이 한국 최초의 창작SF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기념비적인 단편. 작가가 가장 왕성하게 창작을 하던 시절의 산물로 사실주의 경향의 작품을 주로 쓰던 와중에 나온 작품이라 특히 이채롭다.
◇ 로봇과 침대의 무게 / 나오키 산주고 (1931)
나오키상이라면 일본 소설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지만 정작 그 상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나오키 산주고의 작품은 한국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역사소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이 단편은 그의 비브로그래피 중에서도 이질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성(性)을 과감하게 다루어 아마도 당시에는 파격적인 작품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 전리층의 유령 / 로드 던세이니 (1955)
유령이 나오기 때문에 SF로 분류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소설이 쓰인 당시의 최신 과학 지식이 주요 소재로 쓰이고 있어 과학소설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으리라 믿는다.
◇ 천 년 후의 세계 / 운노 쥬자 (1939)
영미SF를 말할 때 H.G. 웰스를 뺄 수 없듯이 일본SF의 역사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중요한 작가 운노 쥬자의 단편. 발표 당시엔 그럴싸한 미래를 예측한 것이겠지만 오늘날에는 복고적인 미래의 모습(〈레트로퓨처〉라는 서브장르로 불리기도 한다)으로 읽히게 된다. 성형수술을 예언했다는 점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