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을 위한 이단의 경제학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무역 자유화, 기술진보 및 최고경영자의 보수 급증과 1980년대 이후 소득 재분배 및 복지 정책의 약화 등에 기인하여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평균 소비 성향 차이 때문에 전체 소비가 위축된다. 또한 의료기술의 발전, 영양 관리 개선 등으로 기대수명이 증가하고 있고 인구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연금 등 미래 소득에 대한 불안도 확대됨에 따라 중장년층의 소비가 쉽게 늘어나기 어렵게 되었다. 한편 기업들은 성과연동 보상 체계 등으로 단기 성과주의에 빠져 있고 국외 직접투자가 쉬워짐에 따라 설비 투자에 소극적이고 내부 유보만 늘리고 있다. 이처럼 소비와 투자가 위축된 상황에서는 부채 확대를 통한 경제 성장 전략을 추진하게 된다. 2000년대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까지 미국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 중국도 지난 수년간 소비 및 수출 부진에 대응하여 부채 주도의 경제 성장을 추진하였으며 그 결과 최근에는 기업 등을 중심으로 한 부채 문제가 핵심 이슈로 등장했다.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가계 부채 증가에도 불구하고 주택시장의 위축을 우려하여 적극적인 안정화대책을 추진하지 못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2. 부채주도에 의한 경제성장 전략은 초기 단계에서는 자산 효과를 통해 소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금융(또는 자산) 부문에 투자하기 위해 가계와 기업이 받은 대출의 원금과 이자는 실물 부문의 경제 활동에서 얻은 소득으로 상환해야 한다. 또한 자산 가격 버블 등으로 금융 부문에서 얻는 수익이 실물 부문보다 커지면 비금융 기업들도 금융 부문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려 한다. 이 때문에 부채 주도 성장전략은 점차 실물 부문의 경제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국은행이 2012년 <부채 경제학과 한국의 가계 및 정부 부채>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에서 가계 부채 누증으로 민간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고 경고했던 것은 이런 논리에 기반을 둔 것이다. 한편 실물 부문, 즉 경제의 펀더멘탈에 비해 신용이 과도하게 확장된 상황에서는 금리 상승, 경제 성장 위축, 부동산 가격 하락 등의 충격이 발생하면 금융 위기가 초래된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바로 그에 해당한다.
3. 부채 증가와 자산가격 상승이 동시에 이루어지다 어느 순간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 자산 가치 대비 부채의 비율이 빠르게 높아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민간 경제 주체들이 효용 극대화나 이윤 극대화가 아닌 부채 최소화에 경제 활동의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민간의 소비, 투자 등 유효수요가 위축되면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는데 이를 대차대조표 불황(balance sheet recession)이라 한다. 대차대조표 불황 시기에는 중앙은행이 본원통화 공급을 확대하여도 민간의 대출 수요가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이 어렵게 된다. 따라서 경제 성장을 위해 수출을 증대하거나 정부 지출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유로존의 경우 개별 국가가 환율 조정을 통해 수출을 늘리기가 곤란하기 때문에 재정 지출을 확대하여 경기를 부양하려 하였다. 그 결과 남유럽 국가들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큰 폭으로 높아졌으며 정부 부채 수준이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 이르러 있다. IMF 등에서 한국은 현재 정부 부채가 그리 많지 않은 수준이므로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용하라고 권장하는데, 이는 부채수준이 높아진 상황에서는 재정정책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논리에 기반을 둔 것이라 하겠다.
4. 일본의 경우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200%를 훨씬 넘어서 있고 미국이나 남유럽 국가들도 100%를 상회하는 상황이다. 2010년대 초반 경제학자들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지속 가능한 수준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하버드대의 로고프(Rogoff) 교수는 동료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90%를 넘어서면 그 아래로 하락하는 데 평균 23년 정도 소요되고 동 기간 중 경제 성장률이 1%p 가량 낮아진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뉴욕대의 크루그먼(Krugman) 교수는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해석한 저명한 교수의 논문으로 유로존이 긴축 정책을 시행하다 경기 침체 장기화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IMF도 최근에는 성장이 동반되지 않고 정부 부채를 감축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점진적인 재정 건전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선회하였다. 지금 경제학자들의 관심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집중되어 있다.
“과연 어떤 방법을 통해 정부부채를 해소해 나가야 할 것인가?”
“머지않은 장래에 다시 금융위기가 발생한다면 재정을 통해 감당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정부부채 수준이 높기 때문에 금리 정상화 등이 쉽지 않은 재정우위(fiscal dominance) 체제가 될 수밖에 없다면 저금리에 따른 금융 불균형 심화는 어떻게 막아야 하는가?”
5. 인구 고령화 진전, 소득 불평등 지속, 높은 채무 부담 등에 따른 소비 위축, 불확실성 증대로 인한 기업 투자 위축, 경기 침체에 따른 이력 효과 등으로 선진국과 아시아 신흥국 등에서 구조적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가 현실화되고 있다.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투자보다 저축이 많아지고 잠재 성장률도 낮아져 중립적 균형 실질금리가 상당한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면 명목금리의 하한 때문에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이 어려워진다. 이 경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는데 이를 “구조적 장기침체”라 말한다. 구조적 장기침체가 현실화됨에 따라 범세계적으로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경제 주체들의 위험 선호 경향을 강화시켜 실물-금융 간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새로운 금융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계속해서 금융 불안 가능성을 제기하며 현재의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IMF나 미 연준은 재정과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 금융안정은 거시건전성정책을 통해 대응하면 된다는 분리대응원칙(separation principle)을 고수하고 있다. 과연 어느 편의 주장이 옳을 것인가? 분리대응의 원칙을 적용하고자 해도 과연 거시건전성정책(macroprudential policy)을 잘 수행할 만한 체계를 갖추고 있는가? 하버드대 교수인 서머스(Summers)의 말대로 통화정책만으로 경기·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면 중앙은행에 거시건전성정책의 수단과 권한을 부여해야 하는가? 우리 앞에 놓인 연구 과제들이다.
6.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부 국가에서의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등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하면서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은 물가 안정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고 통화정책을 추진하였다. 많은 연구들은 명시적이나 묵시적으로 채택되었던 중앙은행의 물가안정목표제가 중앙은행의 신뢰성 제고에 도움을 주었으며 기대 인플레이션을 안정시켜 최근과 같은 글로벌 경제의 대침체(great recession)에도 세계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지지 않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그동안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만 초점을 두는 인플레이션 편향(inflation bias)을 가지고 있으며 인플레이션이 목표 수준보다 낮은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경기 부양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한다. 스웨덴 중앙은행의 부총재를 지냈던 스벤슨(Sevensson)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보다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금리를 인하하지 않아 높은 실업률을 초래했다고 주장하였다.
“중앙은행은 실제 인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 목표보다 낮은 경우 적극적으로 부양 기조를 취하는 등 통화정책을 대칭적으로 수행해야 하는가?”
“더 이상 인플레이션이 문제되지 않는다면 지금은 성장과 고용 안정에 더 가중치를 두도록 명목 GDP 목표제를 채택해야 할 것인가?”
“중앙은행이 테일러 준칙보다 최적제어이론(optimal control)을 바탕으로 통화정책을 수행함으로써 고용 증진을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이 목표보다 상당히 높아지는 것도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7.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으나 지구 온난화 및 그로 인한 기상 이변, 오존층 파괴, 열대림 파괴 등의 환경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지구의 환경 문제가 더 이상 돌이키기 어려운 임계점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지구 환경을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 인류가 강력한 대책을 추진할 기회의 시간도 10∼20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구조적 장기 침체에 빠진 글로벌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과거처럼 고소득층의 과시 소비, 중산층 이하의 모방 심리 등을 자극하여 낭비적인 소비를 조장하거나 새로운 나라를 개발시켜 수출 수요를 늘리는 등의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환경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지금은 경제 성장과 환경 보존 모두가 가능한 방안을 찾아야만 한다. 환경오염을 심화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자원 생산성을 높이거나 재생 가능, 친환경에너지 개발 등에 대한 투자를 높이는 방향으로 재정 지출을 늘리고 친환경산업 자체가 신성장 동력 산업이 되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인 트럼프의 기후협약에 대한 반대 태도는 지구촌 생태시스템의 개선을 위한 기회의 시간을 더욱 줄일 가능성도 있다.
8. 1990년 이후 ‘고용 없는 성장’이 세계 경제의 주요 관심사가 되어 왔다. 이는 컴퓨터 자동화 시대의 도래에 따른 것으로 기업들이 경기 침체기에 들어서면 근로자를 해고했다가 회복기에는 컴퓨터 및 자동화 설비를 통해 대체하는 전략을 채택하였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도 주요국에서 GDP는 2007년 수준을 회복했으나 고용률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구조적 장기 침체를 극복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도 빠른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는 기술 진보, 즉 제4차 산업혁명이 성공을 거두는 것인데 이는 생산 라인과 상품 라인의 지능화로 실업률을 급격하게 높일 가능성이 있다. 일부 연구에 의하면 인공지능 등에 의한 자동화에 따라 현재 미국 일자리의 50% 가량이 10∼20년 이내에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리프킨(Rifkin, 2014))의 주장처럼 한계비용이 제로인 사회가 도래한들 실업률이 50%에 달한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될까? 아무리 제품 가격이 낮아져도 실업자는 그것을 구매할 소득이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제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나타날 독점화의 심화에 대응하여 소득 재분배를 개선하고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방안에 대해 지금부터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또한 지금 눈앞에 닥친 생산 가능 인구 감소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이민자를 받아들이면 오래지 않아 이들에게도 기본소득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고 중장기 전략을 짜야 할 것이다.
9. 경제학은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모형을 설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이다. 그러나 지금 경제학계에서는 변화된 환경을 정확히 포착하는 모형을 갖추지 못한 상태이다. 향후 거시경제학의 분석틀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새로운 분석틀은 ①통화의 내생성을 전제하여 금융기관이 신용 창출에 적극적인 상황을 포함해야 한다. ②소득 불평등과 소비 및 성장의 관계를 포착할 수 있도록 이질적인 경제 주체를 가정해야 하고 ③경제 주체들이 완전히 합리적이지 못하고 제한적으로 합리적이며 불확실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징도 반영해야 한다. ④리카디안 등가정리와 같은 재정정책의 무력성 가설이 성립하지 않고 정부의 재정 지출이 효과를 가질 수 있으며 정부 부문의 과다 채무가 여타 정책들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⑤중앙은행의 역할을 물가 안정에서 금융 안정 등에까지 확대시켜야 하며 ⑥국제통화체제의 불안정성과 소규모 개방경제의 특수성 등을 반영해야 한다. 아울러 ⑦인구 고령화가 유효수요, 인플레이션, 금융 안정, 재정 건전성 등에 미치는 영향을 명시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10. 지구촌 경제가 처한 지금의 상황이 엄중하기 때문에 정책 당국과 학계에서는 진지하게 연구를 진행해 나감과 동시에 정교한 새로운 모형이 정립되기 전이라도 우리가 가진 지식을 총동원하여 미래를 예상해 보고 대책을 강구해 나가야만 하는 시점이다. 이를 위해 비관적 시나리오와 낙관적 시나리오를 제시해 본다.
11. 대차대조표 불황과 구조적 장기 침체 요소가 겹쳐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글로벌 경제는 정치적 리더십까지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구조 개혁 정책의 추진이 지지부진하고 통화, 재정 및 거시건전성 정책이 모두 경기 회복에 중점을 두고 추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 같은 상황이 장기화되면 아주 비관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정부 부채가 극단적으로 누적된 경우가 아닌 국가는 민간 소비 및 투자 위축에 대응하여 재정 지출의 확대를 도모할 것이다. 통화정책은 민간의 기대 인플레이션을 높이기 위해 무책임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정도로 마이너스 수준의 금리를 포함하여 초저금리 기조를 장기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이는 민간의 채무 조정 지연, 자산 가격 버블 및 금융 불균형 심화 등을 통해 경제 전체의 시스템리스크를 상승시킨다. 민간의 자생적 노력으로 신성장 동력이 창출되면 경기가 다소 회복될 수 있으나 디레버리징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간의 부채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의 충격이 발생하면 금융 위기가 재발하고 정부의 재정 능력으로 이를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 글로벌 전체의 수요가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크게 높아질 가능성은 낮으나 환경 재앙이나 국지전 발생 등으로 공급 측면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아울러 중앙은행의 신뢰 약화와 인플레이션 상승이 어우러지면서 비트코인 등 대체 통화가 흥할 수 있다.
12. 정치적 갈등을 극복하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경제 정책이 시행된다면 비관적인 시나리오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재정정책은 냉탕온탕식의 운용을 삼가고 상당기간 확장 기조를 유지하되 장기적으로 건전성을 유지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통화정책은 가능하면 완화적으로 유지하고 자국 통화의 가치가 과도하게 고평가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 자산 가격 버블 등 금융 불균형 확대에 대응하여 거시건전성 규제를 강하게 추진함으로써 자산시장이 아닌 소비, 투자 등 실물 부문으로 자금이 흘러가게 해야 한다. 디레버리징이 어렵고 채무 상환 능력이 개선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채무 탕감이나 감축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완화적 거시경제정책 기조를 장기간 유지하면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미시적이고 구조적인 대책을 병행하여 추진해야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을 민간과의 협력을 통해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관련 분야에 대한 규제를 정비하고 지원 조치를 취해야 한다. 소득 불평등 완화 및 고용 창출을 위한 소득 주도 성장 전략을 채택하고 복지정책 강화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줄여야 하며 친환경 산업을 또 다른 성장 동력으로 육성해야 한다. 생산 가능 인구의 축소에 대응하는 것도 출산 장려, 이민자 수용, 인공지능시대 도래를 모두 염두에 두고 중장기적 밑그림하에 추진해야 한다. 완화적 거시경제정책이라는 마중물을 기반으로 구조개혁정책이 성공적으로 수행되는 경우 제4차 산업혁명이 꽃피워질 것이다. 공유경제 활성화, 친환경 및 재생에너지 사용 등에 기반을 둔 생태적 산업혁명이 구현되면서 경기 침체를 극복하고 환경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13. 한편 비기축통화를 가진 소규모 개방 경제 국가인 경우에는 자본 유출 위험 때문에 매우 적극적인 초저금리 정책이나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한 부양 정책 추진이 어려울 수 있다. 비교 대상 국가에 비해 기초 여건이 부실하면 국제 투자자들이 우선적으로 자금을 빼기 때문이다. 경기 부양을 위해 거시건전성정책을 완화적으로 유지하는 경우 실물-금융 간 불균형이 심화되어 금융 위기가 발생하거나 자본 유출 가능성을 더욱 높이게 된다. 아울러 선진국의 경기 회복이 너무 빠르거나 다른 나라에서 금융 위기가 발생해도 자본 유출 위험은 커지게 된다. 따라서 이들 국가는 위험 관리 차원에서 적절한 “완화적 통화 및 재정정책-긴축적 거시건전성정책”의 조합을 찾아내고 신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적극적인 구조 개혁 정책을 펴나가면서 선진국의 경기가 회복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정부 부채 수준이 여전히 선진국들에 비해 양호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재정을 통한 부양정책을 과감하게 펴는 데 주저하고 한국은행이 정책 금리를 공격적으로 낮추지 못하였던 것이 기축통화를 가지지 못한 소규모 개방 경제라는 한국 경제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14. 기존 주류경제학의 사고틀을 조금 수정함으로써 미래를 전망한 후 정책 대응 방향을 도출하는 것만으로 현재 세계 경제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들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마 현재의 구조적인 문제는 주류경제학의 분석틀을 다소 충격적일 정도로 흔들어야 풀릴지 모른다. 선대 경제학자나 비주류경제학자가 제시한 아이디어들은 새로운 사고 체계를 정립하는 데 다음과 같이 유익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소득 불평등의 심화가 그동안 주류경제학이 단순한 기회 평등에만 관심을 둔 데 기인할 수 있기 때문에 롤즈(Rawls)의 정의론 등에 입각하여 결과의 평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더 나아가야 할 것이다. 시장 실패나 경제 왜곡을 치료하기 위해 추진되는 노동시장 구조 개혁 등의 정책이 소득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사회적 권력의 불균형도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경제 성장이나 경제정책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영향을 점검하자는 주장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이 일반화되고 10∼20년 이내에 인공지능 등 제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면 실업자가 크게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하거나 일정 임금하에서는 일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정부가 고용해 주자는 방안에 대해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금융 부문이 너무 커지면 오히려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금융 위기가 다시 발생하는 경우 은행에 대해 100% 지급준비율을 부과하는 시카고 플랜 같은 강력한 조치를 도입해야 할지 모른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현재의 채권 계약은 채권자가 채무자에 비해 일방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채무자 개인의 책임이 아닌 것에 의해 손실이 발생하면 채권자도 손실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전반적인 주택 가격 하락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부채 탕감 등을 통해 채권자도 손실을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도 의미 있다고 본다. 장기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큰 폭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주장했던 게젤(Gesell)의 주장이 현실화될 징후도 보이는데 이의 실현을 위해 현금 없는 사회 전환 등 필요조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소비자들이 국내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의 제품에 대해서만 구매해주는 방식으로 운동을 전개하자는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이에는 기업들에게 국내에서 일자리 창출, 임금 인상, 수입의 일정 수준 이상 세금 납부 등 충성 맹세를 받자는 주장도 포함된다.
15. 지구의 환경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있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비용 분담 등의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 체계가 필요할지 모른다. 과거 인도주의 사상이 일어나면서 노예해방을 이루었듯이 인간은 지구 생태계의 한 부분이며 인간과 환경은 상호 의존관계에 있기 때문에 지구 환경의 혜택은 모든 생명체가 공유해야 한다는 지구촌 생태계의 공존 사상이 정립되고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 경우 부(wealth)는 자동차, 건물 등 돈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 자체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에 경제 규모, 성장 속도 등도 온전성(integrity), 회복 가능성(resilience) 및 생명체의 공동선(common wealth of life)에 미치는 영향에 비추어 판단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지구 환경 보존을 위한 비용 부담은 지구촌 모든 생명체가 n분의 1만큼 환경권을 가진다는 원칙하에 분배될 수 있게 된다. 한편 경제 성장의 목표 지수로 GDP 대신 후생지수나 행복지수를 선택하고 이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경제정책을 추진할 필요도 있다. GDP에 주부의 가사 활동 및 가족의 여가 활동 등을 추가로 고려하는 경제후생지표(measure of economic welfare)나 재생 불가능한 천연자원을 비용으로 처리하고 공해 요인과 범죄 등 사회적 손실 비용을 포함시킨 경제적 복지지수(economic aspect of welfare) 등을 작성하여 활용할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