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전집 7
선귤자(蟬橘子 李德懋 이덕무의 별호)에게 예덕선생이라는 벗이 있었다. 그가 바로 종본탑(宗本塔) 동편에 살면서 분뇨를 쳐 나르는 역부의 우두머리 엄행수(嚴行首)다. 선귤자의 제자 자목(子牧)은 그의 스승이 사대부와 교유하지 않고 비천한 엄행수를 벗하는 것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불만의 뜻을 표시한다. 그러자 선귤자는 이해(利害)로 사귀는 시교(市交)와 아첨으로 사귀는 면교(面交)가 오래 갈 수 없는 것이며 마음으로 사귀고 덕을 벗하는 도의의 사귐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대체로 엄행수의 사는 모양은 어리석은 듯이 보이고 하는 일은 비천한 것이지만 그는 남이 알아주기를 구함이 없다. 남에게서 욕먹는 일이 없으며 볼 만한 글이 있어도 보지 않고 종고(鐘鼓 종과 북)의 음악에도 귀기울이지 않는 사람이다. 이처럼 타고난 분수대로 즐겁게 살아가는 그야말로 더러움 속에 덕행을 파묻고 세상을 떠나 숨은 사람이다. 그의 하는 일은 불결하지만 그 방법은 지극히 향기로우며 그가 처한 곳은 더러우나 의를 지킴은 꿋꿋하니 엄행수를 보고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랴. 이에 감히 그를 예덕선생이라 부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