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아픈 여자들 - 왜 여성의 산재는 잘 드러나지 않는가?
19명의 노동자가 말하는 일과 아픔
젠더 불평등이 실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산업재해가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연구자와 활동가들은 실제로 그런지 확인해 보기로 결심하고 19명의 노동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더불어 고용노동부 발행 자료와 근로복지공단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얻은 통계 자료를 분석했다. 이 책에는 그렇게 만난 여성 노동자, 장애여성 노동자, 성소수자 노동자, 산재 피해자 가족이 솔직하게 꺼내 놓은 이야기와 통계 자료 분석이 담겨 있다.
“몰라요, 몰라. 재수가 없었던 것 같아, 아까 말한 대로 그냥.” 종일 돌아다니며 일하는 여성 가전관리사에게 넘어져 다치거나 위협적인 고객을 만나는 일은 그저 재수가 없는 일 이었다. 남성이 다수인 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는 자기 몸에 맞지 않는 설비와 개인 보호구가 일으킬 위험에 관해 토로했다. 성희롱으로 발생하는 정신 질환이나 과로가 일으키는 유·사산은 산업재해 라는 글쓴이의 말에 눈이 커지면서 “그게 정말이냐?”고 되묻는 여성 노동자도 만났다. 출판 노동하는 뇌병변 장애여성은 허리와 손 통증이 일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를 객관적 으로 인정받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성소수자 노동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인정받는 평등한 일터가 모두가 건강할 수 있는 일터라고 말하는 이도 만났다. 또한 가사·돌봄 노동의 부담을 온전히 개인이 져야 하는 부당함을 토로하는, 또 다른 산업재해 당사자인 산재 피해자 가족 을 만났다. 그리고 산업재해 예방·보상 제도와 정책 시스템의 밑바탕이 되는 산재 관련 통계를 분석한 결과, 통계는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담지 못한 반쪽짜리에 그치고 있었다.
생생한 이야기와 통계 분석을 통해 글쓴이들이 확인한 산재에서의 젠더 불평등은 예상을 넘어선다. 객관적 수치가 드러내는 불평등은 물론이거니와, 여성 노동자의 산재는 아픈 몸이라는 자책과 쓸모없는 노동력이라는 사회의 낙인으로 구성되고 있었다. 이는 신청-요양-복귀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산재 처리 과정에 더욱 섬세한 제도적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노동자 건강권에 페미니즘을 더하는 이유
글쓴이들은 “이 책을 기획하며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기 때문에 여성의 산재가 더 많이 승인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산재 제도 접근 자체에 대한 어려움, 산재 요양 시의 어려움과 복귀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따라서 글쓴이들의 저 말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왜 저런 말을 굳이 하는 걸까? 책에 인용된 〈한겨레〉(2021.7.13.) 기사 “건설업은 위험, 돌봄은 안전?…성별 편견에 가려진 여성 산재”에 달린 댓글과 같은 인식 때문이다.
“돌봄 노동하다 사망이나 중증 장애까지 되는 치명적 산업재해를 입는 여자들이 연간 몇이나 됩니까? (중략) 건설업 하다 죽은 남자들은 무려 117명인데. 그런데도 제목은 마치 돌봄 노동도 건설업과 동급으로 위험한 일인 양 건설업은 위험, 돌봄은 안전? 이라고 제목을 뽑는 게, 눈 가리고 아웅 하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거죠. 우선 제목부터가 남혐페미선동 기사 맞아요. 페미식 남혐이 별 게 아니라, 이런 겁니다.”
이 댓글은 치명적인 장애 혹은 사망 사고가 발생해야만 일터의 위험이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인식, 건설업 사고 재해자에 여성은 없을 것이라는 인식에 기초한다. 이러한 인식에 따르면, 여성 다수 일터도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은 그저 남성 혐오 일 뿐이다.
하지만 남성 노동자의 높은 재해율은 특정 작업에 여성 노동자를 배제하고 남성이 과도한 육체노동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보는 젠더 규범, 생계 부양자로서 부과되는 가족에 대한 경제적 책임감, 그들이 호소하는 신체적 고통을 둔감하게 바라보는 사회적 압력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남성 노동자의 건강 문제 또한 젠더의 측면에서 더 많이 다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일터를 우리의 몸에 맞게 만들어 가기 위해 페미니즘 관점을 가져오는 것은 개탄스러워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표준노동자=건장한 비장애 남성 이라는 환상을 깨는 책
글쓴이들이 만난, 그러니까 이 책에 등장하는 19명의 노동자에는 여성 노동자만 있지 않다. 장애여성 노동자, 성소수자 노동자, 산재 피해자 가족도 있다. 여성 노동자와 더불어 이들을 만난 까닭은 무엇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최대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이윤을 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생산하고 많이 팔아야 한다. 물론 사업주만 자본이 필요한 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노동자도 더 많이 벌어야 하고 더 일해야 한다. 유급 노동 현장에서 기대하는 일하는 몸은 하자 없이, 쓸 만한 몸 이다. 충분한 이윤을 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일할 수 있고, 사용자가 언제든 일터로 다시 불러내 쓸 수 있도록 노동시간 외에는 회복이 저절로 이루어질 수 있는 몸이다. 그리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몸들, 곧 장애인, 여성, 혹은 다른 몸을 가진 사람은 노동에 부적합한 몸으로 취급된다.
물론 자본주의가 노동자의 몸을 소외시키는 것은 비단 여성 성별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성별뿐 아니라 나이, 국적, 인종 등 다양한 층위에서 이른바 표준의 몸 에 어긋나는 모든 사람의 몸 모두 소외의 대상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오로지 노동자가 최대한의 이윤을 낼 수 있는 몸일 때 그 가치를 인정하고 대가를 지급한다. 글쓴이들이 여성의 산재를 이야기하는 목적은 일하다 다친 몸, 자본주의에서 쓸 만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몸이 어떻게 소외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따라서 여성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한 대안은 여성의 몸만이 아니라, 표준이 아닌 모든 몸 을 위한 제언이 된다. 이와 관련해 한국여성노동자회의 박선영 정책연구위원은 추천사에서 “ 표준노동자=건장한 비장애 남성 이라는 환상을 깨는 책”이라고 일갈한다.
최고의 보상은 예방이다
흔히 산재 라고 하면 보상 을 생각한다. 그래서 노동자가 산재보험급여를 청구하지 않는 대신 사업주와 합의해 치료비나 요양을 제공받는 공상 을 산재 보상 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글쓴이들이 여성 산재 노동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것은 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결코 보상 영역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산재 신청의 문턱이 높고, 요양은 충분하지 않고, 복귀는 요원한 가운데 정말 필요한 것은 그저 내 몸으로 일해도 죽거나 다치지 않는 일터였다. 노동안전보건 영역에서 성별을 강조할수록 여성은 취약한 존재 라는 성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해 취약한 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의 논의로만 흘러갈 수도 있다. 그러나 취약한 노동자는 성별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언제까지나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산재 노동자를 제외하는 방식으로 보호하려고 할 수는 없다. 쓸 만하지 않은 몸 이 배제된 그 위험한 자리는 결국 표준으로 분류된 남성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위험에 노출되어 다친 노동자의 몸은 다시 쓸 만하지 않은 몸 중 하나로 분류되고 소외된다.
산업재해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하는 것은 곧 공적 영역에서 사용자와 노동자가 입은 피해의 크기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상은 곧 해당 재해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 가겠다는 약속이어야 한다. 재해 현장의 노동자에게 최고의 보상은 예방이고,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끊임없는 시도가 있어야만 보상의 지속이 가능하다. 그래야 재해 노동자는 다시 재활을 통해 일터로, 노동시장으로 돌아가 본인의 삶과 노동시장의 안정성을 존속시킬 수 있다.
다친 몸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재해 예방 시도가 없는 일터, 재해 노동자가 다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대신 다른 노동력으로 쉽게 대체하는 풍경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이제는 보상-예방-재활이 긴밀하게 연결된 제도를 바탕으로 성별, 인종, 장애 여부,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과 관계없이 모든 몸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일터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몸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