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정치학 - 현실주의자의 진보집권론
‘운동권 세계관’ 대신 현실주의 진보정치학을 고민한다
‘정치를 통해 좋은 세상 만들기’를 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권력을 잡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솔루션을 갖고 있어야 한다. 전자는 정치공학이다. 후자는 정책공학이다.
전작이었던 《좋은 불평등》은 ‘정책공학’을 다룬 책이다. 《이기는 정치학》은 ‘정치공학’을 다룬다. 한국정치사에서 민주당 계열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잡은 것은 딱 두 번이다. 2004년 총선 이후 노무현 정부, 2020년 총선 이후 문재인 정부다. 두 번 모두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대형 사건이 발생했고, 진보진영에 유리한 정치환경이 조성됐다.
민주당 계열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두 번 모두 정권교체를 당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저자는 민주당의 지도부, 국회의원들, 진보언론, 진보계열 시민단체, 핵심 지지층에 이르기까지 ‘80년대 운동권 세계관’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기는 정치학》은 좋은 정치를 꿈꾸는 시민들과 정치 행위자들이 볼만한 ‘현실정치 교과서’를 목표로 한다. 현실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은 선거다. 기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존재하는 조직 중 가장 효율적인데, 그 이유는 KPI(핵심성과지표)가 분명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정당과 시민운동의 가장 큰 차이점도 정당은 KPI가 분명한 조직이라는 점이다. 정당의 핵심성과지표는 ‘선거 승리’ 여부다.
《이기는 정치학》은 한국 정치의 주요 사건과 정책들을 ‘선거’라는 프레임과 연동해서 살펴본다. 문재인 정부의 종부세(종합부동산세)가 왜 결국 ‘정권교체 촉진세’가 되고 말았는지, ‘세대효과’ 개념을 중심으로 민주당에는 왜 이준석-천하람같은 청년 정치인이 없는지 그런 현상들을 추적하고 분석한다. 또한 1987년 민주화 이후 9번의 총선과 8번의 대선을 분석해서 선거승리의 3대 요인-분열, 반사이익, 중도확장-을 정리한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 탄핵 촛불연합(진보+중도+개혁보수)이 어떻게 ‘촛불혁명’ 담론에 밀려 결국 해체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2024년 총선과 2027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승리하기 위해 무엇을 혁신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이기는 정치학》 사용 설명서
①진보 진영의 통념 깨기
전작이었던 《좋은 불평등》이 진보 내부에 존재하는 ‘운동권 경제학’과 대결하는 책이라면, 《이기는 정치학》은 진보 내부에 존재하는 ‘운동권 정치학’과 대결하는 책이다.
진보 진영은 한국 정치에 관해 두 가지의 통념을 갖고 있다. 먼저 한국 정치를 ‘진보 우위 구도’로 보는 관점이다. 이 통념은 중도층과의 연합을 불필요하게 여겨 결국 중도층을 떠나보낸다. 저자는 ‘진보 우위 구도’는 일시적이고 예외적인 사례였으며, 진보 진영은 중도층과 개혁보수와 연합해서야 이길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 하나의 통념은 진보적인 정책이 무조건 좋다는 인식이다. 진보적인 정책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진보적인’ 정책들은 역풍으로 보수계열 정당으로의 정권교체를 도와줬다. 가령, 종부세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여러 나라의 세제를 비교, 연구한 후 한국의 종부세가 효능감은 낮고 반감만 큰, 잘못 설계된 제도였다고 이야기한다. 저자에 따르면 종부세는 소득 분배나 경제 민주화에 기여하기는 커녕 정권교체를 재촉한 ‘정권교체 촉진세’였다.
②선거를 중심으로 한국 정치사의 중요 사안들 정리
정치 행위자들은 복잡한 현실정치의 한복판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다.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복잡다단한 현실정치를 헤쳐 나갈 수 없다. 《이기는 정치학》은 현실정치의 여러 국면에서 벌어졌던 사안들을 선거라는 프레임을 통해 정리하고 분석한다.
민주당이 집권하던 시절 ‘너무 진보적인’ 정책들이 오히려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정권교체를 도와줬던 사례들을 분석하고 그 요인을 정리했다. 노무현 정부 시기 국가보안법 폐지 이슈, 문재인 정부 시기 최저임금 1만 원과 종부세 이슈 등이다. 거꾸로 보수가 ‘너무 보수적인’ 대응으로 상대방 선거운동을 도와준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2010년 무상급식 이슈가 그러하다. 중도확장(반대로 중도이탈도 다루었다)에 관해서는 문재인 정부를 만들었던 ‘촛불연합’이 어떻게 해체에 이르는지 그 과정과 요인을 정리했다. 자기 혁신에 성공해 선거에 승리한 경험도 중요하게 다루어 분석한다. 한국 정치사에서 ‘불리한 판세를 뒤집은’ 선거의 교과서로 평가받는 2012년 박근혜 비대위와 2016년 문재인-김종인 비대위의 사례를 분석하고 성공 요인을 정리했다. 그리고 현실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중도’의 개념적 실체가 무엇인지, 성공적이었던 중도 정책의 사례들은 무엇인지, 중도확장의 개념적 본질이 무엇인지 정리했다.
③사회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정치분석
좋은 정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장기에는 ‘경제학’이 중요하고, 중기에는 ‘정치학’이 중요하고, 단기에는 ‘심리학’이 중요하다.
경제학은 경제성장과 일자리의 문제를 다룬다. 예컨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산업화 과정에서 했던 리더로서의 역할은 현재도 한국 보수를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기둥이다.
정치학은 세력연합과 유권자연합을 다룬다. 대통령과 정당 지지율의 변동은 세력연합과 유권자연합의 결합및 분열로 인한 경우가 일반적이다. 세력연합과 유권자연합의 사례를 풍부하게 분석하고 방법론을 익히는 것은 현실정치에서 승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심리학은 단기적인 캠페인 전략을 다룬다. 선거 캠페인은 ‘단기적 심리전’의 성격이 강하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다.”라는 표현처럼, 단판 승부인 경우 팀 전체 전력은 상대 팀에게 뒤지지만, 좋은 투수 한 명이 있으면 대등한 게임을 하거나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선거 캠페인도 비슷하다. 2012년 총선에서 박근혜 비대위와 2016년 총선에서 문재인-김종인 비대위의 성공요인을 분석해보면 ‘단기적인 심리전’에 잘 대응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 정치를 향한 조언
좋은 정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경제학, 정치학, 심리학(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두루 능통해야 한다. 리더 혼자서 이것을 모두 잘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팀’이 중요하다. 유능한 인재를 참모로 두고 팀을 만들어서 시행착오를 통해 호흡을 맞추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최강의 팀’이다. 선거는 상대평가이기에 상대방이 분열하거나 실수에 의한 반사이익으로 승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공하는 국정운영의 사례를 남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좋은 리더와 유능한 팀이 결합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