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오디세이 - 돈과 인간 그리고 은행의 역사
돈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던 사람들의 은밀하고 위험한 역사
중앙은행 베테랑 뱅커가 들려주는 금융 이야기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모든 경제 활동 중심에는 ‘돈’이 있었다. 처음 은행은 어디서, 어떤 이유로 생겨나고, 중앙은행은 어떻게 해서 돈을 발행하게 되었을까? 금융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이 책에서는 금융이 다루는 돈의 정체와 가치에 관한 논쟁의 현장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금융기관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바뀌었다. 뉴욕 맨하튼 월가 점령 시위를 기폭제로 사람들은 부도덕한 금융기관을 혼내주고 싶어 했다. 요즘에는 비트코인 류의 가상화폐나 소위 ‘탈중앙화 금융(DeFi)’ 운동을 통해 시민의 손으로 직접 금융기관을 쫓아내고 싶어 한다. 이러한 저주와 경멸은 과연 금융기관의 숙명일까? 금융기관은 사회에 기여하는 것도 없이 서민들을 착취하는 존재일까? 금융은 무엇이 특별한 걸까? 저자는 이런 질문에 답을 찾는 것이 이 책을 쓴 이유라 말한다.
돈과 은행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돈의 역사는 곧 돈을 둘러싼 사건과 사람들의 설화다. 돈을 만드는 금속(금과 은)이 가치 있기에 그것을 깎아내려는(디베이스먼트)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종교에 헌금하고, 교회는 그 헌금을 예금하고 면죄부를 팔았으며 그 돈으로 사람들을 움직였다. 편의를 위해 돈의 가치를 조작하고(금본위제 폐지),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마구잡이로 돈을 찍어내고, 그 돈이 결국 경제를 망가뜨리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금융기관과 금융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곱지 않다. 그래서 특별히 더 규제하고 감시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한다. 이런 금융기관에 대한 비호감은 역사를 되짚어보면 예수 시대부터 이어지고 있는 유대인에 대한 혐오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은행은 어떻게 탄생한 걸까? 은행업의 원조에 해당하는 것은 고대 대금업자들이었지만, 중세의 징세도급인과 상인을 거치면서 오늘날과 가까운 모습으로 다듬어졌다. 특히 상인들은 이자 수취를 금지하는 기독교 교리를 피해 기묘한 규제 회피 방법들을 동원해 근대 은행업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중앙은행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상업거래가 늘면서 돈을 들고 다니는 불편함과 돈의 가치를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은 고통스러운 수준에 이르렀고, 결국 1587년 베니스에서 민간은행이 아닌, 지급결제만을 전문으로 하는 최초의 공공은행이 탄생했다.
이처럼 돈이 생겨나고 은행이 발명되고 그 금융 시스템의 정점에 중앙은행이 존재하게 되기까지 벌어지는 일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금융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오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은행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고, 그렇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왔으며, 우리가 맞닥뜨린 금융 환경의 변화 또한 경제학이 풀어야 하는 새로운 숙제를 안겨준다는 점이다.
돈에 대한 오해와 진실, 은행을 둘러싼 사건과 사람들
이 책에는 기존 경제학 교과서에 대한 도전적인 시선이 담겨 있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중앙은행과 은행과 돈을 불가분의 관계로 설명한다. 현재의 금융 시스템을 묘사하는 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폐는 은행과 중앙은행이 없었을 때부터 존재했다. 돈은 교환의 편리를 위해 발명된 것이며 은행은 부의 축적과 관계된다. 일반적으로 금융이란 세속적이고 시장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믿음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돈과 은행의 역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신성모독, 대금업, 군주, 전쟁이다. 이는 흔히 경제학에서 말하는 물질, 교환, 자유시장, 균형이 아닌 종교, 정신, 규제, 위기 등이 돈과 은행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음을 말한다. 이처럼 저자는 우연과 필연이 뒤섞여 발전해 온 금융경제 시스템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먼저 고정관념이나 도그마들을 배제한 채 돈, 은행, 중앙은행의 원형질을 하나하나 벗겨야 하며, 그러려면 금융을 이해하는 데 배경이 되는 인간과 사회를 둘러싼 역사와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한국, 유럽, 미국의 금융사를 사건과 사람을 중심으로 빠르게 훑어나간다. 특히 가상화폐 출현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화폐가 무엇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돈의 정체를 고민한 2장은 그 질문의 답을 찾는 이들에게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은행이 핀테크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는 오늘날 은행의 정체성과 미래를 밝힌 12장 역시 좋은 힌트가 될 수 있다. 특히 이번 개정증보판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도탄에 빠진 독일 경제를 부흥하기 위해 발버둥 친 인물인 ?l마르 샤흐트도 소개한다. 그가 오늘날의 국제결제은행(BIS), 특별인출권(SDR), 자산담보부증권(ABS)을 제안했을 때 사람들은 기이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독재와 손잡은 그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금융의 대변혁기에는 샤흐트처럼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생각도 필요함을 역설한다. 돈의 탄생부터 글로벌 금융위기를 지나 가상화폐의 등장까지, 은행을 둘러싼 사건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 금융의 과거와 미래로의 여정을 함께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