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협조자들
한국 사회에 혼란을 조장하기 위해 파견된 간첩, 북한에서의 지독히 현실적인 훈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빠른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주인공은 한국 도착 첫날부터 어리버리한 행동을 일삼게 된다.
이리저리 치이다 재개발 전의 을지로 1가의 뒷골목까지 흘러들어간 주인공. 까칠하지만 따뜻하고 올곧은 심성을 지닌 아줌마의 여관에 보금자리를 얻게 되고, 여러 나라에서 온 어중이떠중이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아르바이트 자리에서도 고난을 겪고, 심지어 술집에 들렀다 동성애 남성에게 추행을 당하기 직전의 위기까지 겪는다.
하버드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미국인 크랙, 아프리카에서 온 노동자 사무엘, 필리핀에서부터 남편을 찾으러 온 리비아, 춤을 추며 돈을 버는 러시아인 유리아. 이들은 한국에 적응하고자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던 중 사무엘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증오가 폭발하게 되고, 주인공은 이 사건을 기회삼아 폭동을 모의하게 된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들의 목표는 점점 자신들의 보금자리인 여관과 을지로 1가 철거민을 지키는 것으로 향하게 되는데...
<작가소개>
작가가 되기 위해서 뉴질랜드에 있는 파라파라우무라는 해변에서 글을 쓰고 있다.
친구들이 나보고 미쳤다고 한다. 나도 그런 거 같은데 미치지 않고 사는 친구들이 나보다 재미있게 인생을 사는 것 같지는 않다. 오늘도 알람시계에 의지하지 않고 일어났다. 아주 개운하다. 냉장고에서 아무거나 집히는 데로 주워 먹으며 글을 쓴다. 다시 점심을 재빠르게 흡입하고 산책을 나간다. 해변을 몇 시간동안 산책한 후에 다시 글을 쓴다. 생각이 날 때만 샤워를 한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저녁을 먹고 아니면 계속 그냥 글을 쓴다. 쭈그리고 잠을 잔다. 순간순간 하고 싶은 일만 한다. 자신을 속이는 뇌보다는 몸의 본능에 충실한 삶이다. 이런 생활이 나라는 인간에게는 너무나 재미있다. 죽기 직전에 침대에 누워서 이렇게 외치고 싶다.
“참 재밌었다.”
부모님은 내가 어릴 적 여기저기 싸놓은 똥을 치워주셨다. 이 소설을 위해 최근에 돈을 긁어모아 필리핀에 취재를 갔다가 사기를 당했다. 내 지갑에 현금이 얼마 없어서 놈들은 열이 받았는지 내 신용카드를 살짝 빼가서 한도까지 긁었다. 현지 친구가 생겼다고 좋아했고, 같이 축제를 구경하러 간다고 들떴는데, 축제는 못 봤고, 잠이 들었는데 내가 잠든 사이에 내 카드를 긁고 고스란히 다시 꽂아 두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 달이 지난 후에야 카드 값으로 내가 쓰지도 않은 몇 백만 원을 결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없는 돈을 갚아야 한다는 사실보다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내 카드를 긁었을까 생각하며 슬퍼졌다. 놈들에게서는 돈을 받을 방법이 없었다.
부모님께서 또 서른이 넘은 아들의 똥을 치워주셨다. 갚을 길이 막막하다. 부모님이 벽에 똥칠을 하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70장 넘게 썼지만 싸놓은 글 꼬라지를 보아하니 앞으로도 내가 싸는 똥을 내가 치우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생각이다.
글을 쓰는 순간만이 내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싸지르지 않으면 다른 똥을 쌀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인생은 길게 나열되어 있는 순간순간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이야기를 듣고, 또 이야기를 싸고, 먹고 싸다가 또 구부러져서 잠이 든다. 나라는 인간은 오늘도 이렇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