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은 처음이라 - 게임회사 노조 이야기
평범한 직장인의 좌충우돌 노동조합 설립기
설립 2년 차 꼬꼬마 노조에 현수막을 걸 일이 생겼다. 키보드로 하는 거라면 뭐든 잘하는 IT인답게 문구는 금방 확정 지었지만, 몸으로 하는 거면 뭐든 못하는 IT인답게 현수막은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걸어야 할지 몰랐다. 그랬다. 길에 걸린 수많은 현수막을 보며 욕은 해봤지만 직접 현수막을 걸어본 적은 없었다. 고민하다가 경험이 있는 A 지회에 물어보았다. “외부 게시용이니까 각목 마감으로 요청하시고 줄도 넉넉히 달라고 하세요.” 역시 물어보길 잘했다. 기억하자. ‘각목 마감, 줄 넉넉히.’
이런 일도 있었다. 노조 설립 뒤 첫 임금 교섭. 마지막까지 희망을 걸었던 회사와의 대화는 역시나 잘되지 않았다. 이제는 진짜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게 노동조합의 첫 번째 집회가 시작되어 버렸다. “자! 다들 밖으로 나가십시더! …근데 우데로 갑니까?” 그랬다. 집회를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햇병아리 노조는 몰랐다.
글쓴이는 ‘게임의 심장’ 판교에 있는 한 게임회사의 정보보안정책 담당이자 노조 수석부지회장이다. 그는 부산에서 나고 자란 평범한 컴퓨터공학과 학생이었다. 26살에 국토 균형 발전의 필요성을 온몸으로 느끼며 서울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우연히 지인을 따라 게임업계에 발을 디뎠고, 그렇게 10년쯤 흘렀을 때 삶에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물론 중간에 회사를 박차고 나가 몇 달간 남미 여행을 한 적도 있지만, 그건 예상 가능한 영역이었다. 그럼 그 예상 불가능한 사건이 무엇이냐고? 그것은 바로 노동조합 설립!
이 책은 노동조합의 ‘ㄴ’자도 배워본 적 없는 평범한 직장인의 좌충우돌 노동조합 설립기다.
내 생각과는 아주 달랐던 노동조합 해명 프로젝트
글쓴이가 노동조합 간부를 한다고 하니 절친 어머니께서 “젊은 놈이 일해서 돈을 벌어야지, 데모해서 돈 벌려고 하면 못쓴다!” 하셨다. 이 말은 다른 어른들(?)에게도 많이 들었다. 차라리 그게 진실이라면 “인생 좀 편하게 살 수도 있는 거지, 왜 부러우세요?”라고 능글맞게 반문이라도 할 것 같다. 진실은 그렇지 않다고 아무리 현실을 말씀드려도 도무지 들으려고 하지 않으신다. 그럴 때는 참 난감하다. 심지어 어머니조차도 “그렇게 인생 망치려고 할 거면 보지 말자”라고 절연을 선언하실 정도였다. 물론 시간이 지난 지금은 멋쩍어하신다.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노동조합에 관한 편견의 하나다.
또 “노조 놈들은 귀족이다”라는 편견도 강하다.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봉이 높은 게임업계 노조는 더욱 이 말을 자주 듣는다. 언론 보도의 영향이 클 것이다. 노동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노동조합은 6,156개, 가입된 조합원은 약 250만 명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그 속에는 수많은 갈등과 사건·사고가 있다. 그리고 그런 갈등은 대체로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일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언론은 이러한 복잡한 갈등의 서사보다는 이 갈등으로 빚어진 현상, 가령 파업이나 집회 같은 결론을 주로 다룬다. 이렇게 되면 기승전을 모르는 제삼자인 시민들은 내 생활에 불편을 주는 노조를 좋게 보기 어렵다. 게다가 이것이 형편이 조금 좋은 노동자들이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만 부리는 집단으로 보일지 모른다.
글쓴이도 노동조합 활동을 하기 전에는 생각이 비슷했다. 그러나 직접 노조를 만들어 활동해보니 생각과는 아주 달랐다. “몰라서 오해했던 부분들이 이해됐고, 이해되니 공감되고, 생각도 바뀌었다.” 이 책은 “막상 내가 보고 겪고 느껴보니, 내 생각과는 아주 달랐던 노동조합에 대한 해명 프로젝트”이다.
생활어로 쓴 노조 이야기 / 살아있는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서
이 책에 많이 등장하는 낱말 가운데 하나가 ‘본조’다. 글쓴이가 속한 노조 같은 지회들의 연합체인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를 일컫는다. 노조를 만들 때, 또는 갓 만든 노조에게 얼마나 모르거나 어려운 일이 많겠는가. 그럴 때마다 노조는 본조에 도움을 구한다. 전문 활동가가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들이 만든 신생 노조이기에 더욱 절실했다. 그럼 오랫동안 다양한 경험으로 무장한 본조에서 노조설립신고서, 집중교섭, 대의원대회, 임금협상, 집회 등에 이르는 노조 만들기와 일상 활동의 ABC를 정석대로 알려준다. 덕분에 꼬꼬마 노조는 무럭무럭 자란다. 책은 2018년 노조 설립부터 현재까지를 ‘1부 나도 모르게 시작된 노동조합 분투기’와 ‘2부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어요’로 나누어 생생하게 기록한다. 노동조합 설립과 운영에 관한 매뉴얼인 셈이다.
그러나 기록의 방식이 남다르다. 우선, 주어를 ‘나’로 하는, 글쓴이가 보고 듣고 겪은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이야기 방식이다. 매뉴얼을 품은 서사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사람들은 흔히 노동이나 노동조합을 중요하지만 재미없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노동계에서 쓰는 낯선 언어와 법률 용어들도 재미없음에 한몫한다. 그래서 글쓴이는 독자가 편안히 읽을 수 있게 업계용어(?)가 아닌 생활어로 쓰려고 노력했다. 이 책은 ‘생활어로 쓴 노동조합 이야기’다.
사실 노동조합은 유럽 선진국에서는 초등교육 필수 과정이고, 헌법에 보장된 시민의 기본 교양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들어 노동인권 교육의 주요 주제로 노동조합을 다룬다. 그런데도 한국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9명 중 1명으로 매우 낮은 편이다. 그나마도 큰 기업이나 형편이 좋은 기업이 대부분이라 정말 필요한 곳엔 노조가 없다. 이 책이 노조를 만들고 싶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노동자들, 살아있는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